[동아광장/허영]정치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 입력 2007년 8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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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곳곳에 패러독스가 잡초처럼 퍼져 있다.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무시하기만 하는 정치, 실체도 없는 시민을 팔아 사욕을 채우는 시민운동, 근로조건 개선과 무관한 정치투쟁적인 노동운동, 탈정치화를 선언하면서 정치 사찰을 계속하는 국가정보원, 서민을 더 힘들게 하는 서민정책, 시한부 위임권력임을 잊은 채 양산되는 ‘대못질’ 정책들, 선진화를 내세운 후진적 언론정책, 교육 발전과 평준화를 빙자한 교육의 황폐화, 균형 발전의 깃발 아래 전개되는 전국의 투기장화, 실력보다 학벌을 따지는 의식 등 선진 사회의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모순과 억지가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져 있다.

그 근본 원인을 따져 보면 합리성보다는 현실적 실리를 추구하는 생활 태도, 법 제도를 정치의 수단쯤으로 경시하면서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농단하는 정치 풍토, 그 토양을 제공한 연고주의 의식구조와 그릇된 보은(報恩)사상, 빗나간 의리와 충성심 등이 있겠다.

한국이 세계적인 선진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의식구조와 법 제도, 정치 행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현실적 실리보다는 합리성을 추구하고, 법 제도를 존중하는 시스템 정치를 하고, 연고에 집착하기보다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르고, 형식과 외형보다는 실질을 따지고, 공적인 직무 수행에서 보은과 의리 및 충성 등의 사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정책 대못질 집착

우선 영향력과 권력이 가장 강한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직 수행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권력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선출된 대통령이 갖는 정책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은 임기 만료와 함께 끝난다. 임기 중에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을 다음 대통령이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정책을 대못질해 두려는 만용은 국제적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는 독선이다. 다음 대통령도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나름의 정책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의 대못질은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과 질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전직 대통령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특정 지역을 볼모로 정치적 훈수와 조종을 일삼으며 정치판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분명히 국제적인 기준에 어긋난다. 특정 지역이 아닌 국민 모두의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에 여생을 바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전직 대통령의 생활 태도다.

정당도 대의민주주의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대의정치는 신임과 책임의 정치다. 신임을 바탕으로 정책을 폈으면 그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자세로 선거에 임하는 것이 대의정치의 국제적인 기준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헤쳐 모여를 반복하면서 정당의 간판을 바꿔 다는 위장술은 대의정치의 보편적인 국제기준에서 한참 동떨어진 일이다.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정당 대의민주정치의 국제적 표준이다.

영호남 국민도 정치의식을 선진화해야 한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정치적 볼모로 선거 때마다 ‘몰표’ 행태를 보이는 일은 이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12월 대선부터 특히 영호남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이 연고주의 사고방식이나 그릇된 충성심 내지 의리를 떨쳐 버려야 한다. 영호남에 사는 사람들이 연고주의 틀을 깨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민주 시민의 정치의식과 투표 행태를 보이는 날, 우리 정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발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정당은 ‘간판 바꾸기’ 구태 반복

시민운동과 노동운동도 달라져야 한다. 시민운동이 일부 정치 지망생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한다. 노동운동은 정치 세력의 간섭이나 정치투쟁의 대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로 조건의 개선을 위한 합법적인 노조 활동은 보호돼야 하지만, ‘노조 귀족’의 세력을 강화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정치적 파업은 단호히 척결돼야 한다. 법치주의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부의 단호한 태도가 절실히 요망된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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