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새시집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 입력 2007년 8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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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은 가지 않고 묵는 것이니 옛 명부전 해 비치는 초석 이마가 물속인 듯 어른거릴 때…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 천년의 꼬리로 휘어지고 천년의 날개로 무너진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서).

신용목(33·사진) 씨는 ‘바람 교도(敎徒)’(시인 박형준)다. 천 년을 묵은 시인의 혀는 바람이 허공에 이빨 자국을 내는 장면을 노래한다. 새 시집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창비)에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육화한다.

신 씨는 내면의 상처와 어둠을 예민하게 포착해 들려주는, 서정의 전통을 착실하게 밟아온 젊은 시인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대개 차분하지만, 은근한 열정이 시어 사이사이 스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붉은 솥’이 그렇다. ‘어떤 기다림이 예까지 번져와//세월의 반죽을 불게 하나요 하루 낮을 다 살면 캄캄한 돌덩이로 돌아가고 말/허기를 짚고, 어머니//어느 가지를 꺾어 저 끓는 솥을 저을까요’.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나무와 잎들과 돌멩이들이 서성이고 떠다니는’ 환상적인 곳이다. 시인이 창조해 낸 아름다운 공간에서 그는 ‘허기’를 느낀다. 물론 살아가면서 누구나 느낄, ‘인생의 허기’다. 시를 읽는 많은 독자들은 시인이 말하는 인생의 허기에 공감할 것이다. 세월은 반죽 붇듯 흘러가는 것이지만 한순간에 캄캄한 돌덩이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허기는 다른 시편에서도 비친다. ‘허기가 허연 김의 몸을 입고 피어오르는 사발 속에는 빗물의 흰머리인 국숫발,/젓가락마다 어떤 노동이 매달리는가’(‘붉은 얼굴로 국수를 말다’에서), ‘욕망을 거울처럼 완벽한 대칭으로 나눠가진 물고기들은/허기의 크기만큼 해초의 유혹에 붙들려왔다’(‘허봉수 서울 표류기’에서) 같은 부분이 그렇다.

허기는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바람 교도’인 그는 그 허기를, 모든 것을 품으며 지나가는 바람이, 자연이 감싸 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가 자랐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새가 앉았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라는 시구처럼.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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