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線의 고통… 2주면 ‘한계 상황’

  • 입력 2007년 8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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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사당 앞 석방 촉구 모임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 광장에서 비정부기구(NGO) 평화나눔공동체(대표 최상진 목사·앞줄 오른쪽)가 개최한 ‘탈레반 억류 한국인 인질 석방 촉구 기도모임’에서 무슬림 대표 이맘 유수프 살렘 씨(마이크 앞)가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美의사당 앞 석방 촉구 모임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 광장에서 비정부기구(NGO) 평화나눔공동체(대표 최상진 목사·앞줄 오른쪽)가 개최한 ‘탈레반 억류 한국인 인질 석방 촉구 기도모임’에서 무슬림 대표 이맘 유수프 살렘 씨(마이크 앞)가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피랍된 지 2주째인 1일 피랍자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여성 인질 2명이 병사(病死)할 수 있다는 탈레반 측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억류 장기화로 건강 악화=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특별한 지병이 없더라도 억류 기간이 2주 정도 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고 우려했다.

현지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윤성환 굿네이버스 아프간 지부장은 “평소 몸 관리를 잘 했던 건강한 사람도 아프간에 처음 오게 되면 며칠씩 앓아누울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2, 3일 동안은 복통과 두통, 어지럼증, 고열 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는 고산지대인 아프간의 기후 탓이 크다. 윤 지부장은 “낮에는 기온이 40∼50도로 올라갔다가 밤에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떨어져 일교차가 심하다”고 전했다.

게다가 물도 석회질이 많고 오염이 심하다. 전갈과 모기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혜진 서울 이대목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면 탈수가 되는데, 이 상태에서 찬 공기를 접하게 되면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억류라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억류 상태에서는 주로 스트레스로 인한 위궤양, 탈진, 신경쇠약 등의 증세가 나타나지만 심각할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억류가 장기화되면 몸의 저항력이나 면역력이 현격히 감소해 감기만 걸려도 폐렴 등 큰 병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픈 사람은 누구?=탈레반 측은 아픈 여성의 이름과 병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국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피랍자들이 있어 가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피랍자 가족들에 따르면 김지나(32·여) 씨는 척추질환으로 약을 복용해 왔다.

이에 대해 정성수 성균관대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정확한 진단은 할 수 없지만 염좌로 생각된다”며 “흔히 허리가 삐끗했다고 하는 질환인데 불편한 자세로 오래 있게 되면 통증이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또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선 온몸의 근육이 같이 경직되기 때문에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지영(34·여) 씨도 저혈압으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의 어머니 김택영(62) 씨는 “딸아이가 몸이 약해 유난히 여름을 많이 타는 체질이었다”며 “특히 저혈압이 있어서 이번에 가는 걸 그렇게 말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외에 이영경(22·여) 씨도 약을 복용해 왔으며 유경식(55) 씨도 갑상샘암으로 수술까지 받은 병력이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란 보고는 없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의약품과 식료품이 피랍자들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랍자 분산 억류=국가정보원은 이날 “납치된 한국인들이 최초 피랍지인 가즈니 주(州)의 카라바그, 안다르, 데약 등 3개 지역의 마을 9곳에 분산돼 억류 중”이라고 밝혔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은 가즈니 주 카라바그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압둘라 그룹’으로, 150여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이며 지역 주민과 파키스탄 등에서 유입된 세력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김 원장은 “이들은 아프간 정부군과 ‘국제치안유지군(ISAF)’의 추적을 피해 억류 장소를 수시로 변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의 가능성과 관련해 “산악 지역이기 때문에 너무 위험하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며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질이 추가로 희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7월 25일 배형규 목사 살해 이후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가 한국군 철수와 수감 동료 석방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며 “아프간 정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납치단체에 대한 협상원칙을 고수하고 탈레반 수감자 석방 시 예상되는 정치적 부담을 우려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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