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한국인 두번째 희생자 심성민 씨

  • 입력 2007년 8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따뜻했던 선생님탈레반에 살해된 것으로 확인된 심성민 씨가 샘물교회 야유회에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조혜숙 씨의 휠체어를 밀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샘물교회
따뜻했던 선생님
탈레반에 살해된 것으로 확인된 심성민 씨가 샘물교회 야유회에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조혜숙 씨의 휠체어를 밀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샘물교회
장애인 제자들에게 늘 미소 짓던 좋은 선생님이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던 듬직한 친구였다. 부모에게는 속을 썩인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착한 아들이었다.

언제까지나 가족, 친구, 제자들과 함께할 것 같았던 그가 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총탄에 숨진 심성민(29) 씨의 짧은 생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았다. 늘 자신이 가진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아쉬워했다. 그 부족함을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채우려고 노력했다.

몸이 불편한 조혜숙(37·여) 씨와 김민지(22·여) 씨에게 그는 ‘친오빠’ 같은 선생님이었다.

심 씨는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안의 ‘샘물사랑방’ 교사였다.

31일 기자들과 만난 조 씨와 김 씨는 “정말 착했어요, 항상 잘해 줬어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내 이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절규로 바뀌었다.

심 씨와 함께 장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헌주 부목사는 “말수는 적었지만 늘 따뜻하게 웃는 선생님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와 선후배 사이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동료였다.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난 심 씨는 진주고를 거쳐 경상대에서 세라믹공학을 전공했으며 학군장교(ROTC)의 길을 선택했다. 운동신경도 뛰어나 ROTC 체육대회에는 빠지는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손을 드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심 씨의 경상대 공대, ROTC 1년 선배인 천영민(30) 씨는 “착하고 성실해서 선배들이 유난히 아끼던 후배였다”며 “그렇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천 씨는 “심 씨가 납치된 것을 알고 선후배들에게 연락해 (무사귀환을) 기원하자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 씨의 인생관에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심 씨의 할아버지는 고성군 출신 독립유공자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심재인(1918∼1949) 선생. 1938년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이사하야(諫早)농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아버지 심진표(62·경남도의원) 씨도 25년간의 새마을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KBS 사회부 기자와 부산총국장 등을 거쳐 올해 초 정년퇴직한 작은아버지 심의표(59) 씨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심 씨의 매형인 신세민(33) 씨는 “처남은 집안 거실에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가 받은 훈장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자라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심 씨였지만 부모의 말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자주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도 ‘워낙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여서 부모도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아프간 봉사활동은 그에게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심 씨는 “제발 건강히 돌아오라”는 가족의 첫 소원을 외면하고 말았다.

사망 소식을 접한 어머니 김미옥(61) 씨는 “내 아들을 왜 죽여요. 살려 주세요. 우린 못 살아요”라고 오열하다 결국 정신을 잃었다.

심 씨의 아버지도 “어제 언론을 통해 성민이가 민가에서 건강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는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아들이라 (위험 지역인) 아프간에 봉사활동을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더라도 말리진 못했을 것”이라며 “아들의 뜻에 따라 서울대병원에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심 씨의 남다른 소신과 신념은 미니 홈페이지에 남겨 놓은 ‘이 길이 굽어갈지라도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신념에 따라 올곧게 한길을 가던 29세의 청년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그의 꿈과 희망도 테러범들의 총탄에 함께 스러졌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