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가족, 친구, 제자들과 함께할 것 같았던 그가 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총탄에 숨진 심성민(29) 씨의 짧은 생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았다. 늘 자신이 가진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아쉬워했다. 그 부족함을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채우려고 노력했다.
몸이 불편한 조혜숙(37·여) 씨와 김민지(22·여) 씨에게 그는 ‘친오빠’ 같은 선생님이었다.
심 씨는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안의 ‘샘물사랑방’ 교사였다.
31일 기자들과 만난 조 씨와 김 씨는 “정말 착했어요, 항상 잘해 줬어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내 이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절규로 바뀌었다.
심 씨와 함께 장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헌주 부목사는 “말수는 적었지만 늘 따뜻하게 웃는 선생님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와 선후배 사이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동료였다.
심 씨의 경상대 공대, ROTC 1년 선배인 천영민(30) 씨는 “착하고 성실해서 선배들이 유난히 아끼던 후배였다”며 “그렇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천 씨는 “심 씨가 납치된 것을 알고 선후배들에게 연락해 (무사귀환을) 기원하자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 씨의 인생관에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심 씨의 할아버지는 고성군 출신 독립유공자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심재인(1918∼1949) 선생. 1938년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이사하야(諫早)농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아버지 심진표(62·경남도의원) 씨도 25년간의 새마을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KBS 사회부 기자와 부산총국장 등을 거쳐 올해 초 정년퇴직한 작은아버지 심의표(59) 씨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심 씨의 매형인 신세민(33) 씨는 “처남은 집안 거실에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가 받은 훈장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자라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심 씨였지만 부모의 말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자주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도 ‘워낙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여서 부모도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아프간 봉사활동은 그에게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심 씨는 “제발 건강히 돌아오라”는 가족의 첫 소원을 외면하고 말았다.
사망 소식을 접한 어머니 김미옥(61) 씨는 “내 아들을 왜 죽여요. 살려 주세요. 우린 못 살아요”라고 오열하다 결국 정신을 잃었다.
심 씨의 아버지도 “어제 언론을 통해 성민이가 민가에서 건강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는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아들이라 (위험 지역인) 아프간에 봉사활동을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더라도 말리진 못했을 것”이라며 “아들의 뜻에 따라 서울대병원에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심 씨의 남다른 소신과 신념은 미니 홈페이지에 남겨 놓은 ‘이 길이 굽어갈지라도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신념에 따라 올곧게 한길을 가던 29세의 청년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그의 꿈과 희망도 테러범들의 총탄에 함께 스러졌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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