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민웅]언론사 압수수색의 엄격한 전제조건

  • 입력 200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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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취재원 보호 문제와 관련해 검찰이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건국 이후 세 번째, 노무현 정권 이후 두 번째다. 동아일보 전산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시도를 지켜보면 언론 자유의 가치와 그 중요성에 대한 우리 권력기관의 기본 인식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 담합이나…” 운운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이 영향을 미쳤는지, “마지막 남은 개혁 대상은 언론과 검찰”이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발언이 영향을 미쳤는지 모를 일이다. 어떻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 자유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언론 자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다른 중요한 가치를 성취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목적론적(teleological) 가치라는 점이다. 언론 자유는 자아를 실현하고 진리(진실)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나아가 언론 자유는 정부를 감시 비판하고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없어선 안 된다. 언론사의 취재 보도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것도 바로 언론사가 국민의 알 권리와 말할 권리를 대행하기 때문이다. 정말 오해 없기 바란다.

고발성 기사 취재원 보호 필수

둘째, 언론 자유는 보도의 자유를 의미하고 보도의 자유는 취재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취재원을 감추는 익명 보도를 남발하면 언론의 공신력이 떨어지는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삼가야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할 때도 있다. 특히 권력기관의 비리, 부정, 부패에 관한 고발성 정보의 경우 취재원을 익명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취재원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바로 그 취재원을 확인하기 위해 담당 기자와 취재원이 주고받은 3개월 치 e메일을 내놓으라면서 동아일보 전산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 차례 시도했다.

셋째, 대한민국은 식민지가 아니라 자치정부를 가진 독립 국가다. 자치정부를 잘 꾸려 가려면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의 대표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헌법학자는 공공 문제에 관한 발언은 자치정부의 운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공공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은 공개적이고 이성적이며 자유로운 토론 과정을 거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논변이다.

또 다른 헌법학자는 언론 자유가 없으면 다른 모든 자유와 권리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언론 자유가 없으면 인간의 다른 기본권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국민에게 알릴 수 없고 공론에 부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우월적 균형론’의 핵심 논변이다. 고로 언론 자유의 권리가 다른 기본권과 충돌할 경우 언론 자유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 우월적 균형론은 어떤 곳에서보다도 법원에서 가장 많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최태민 보고서’를 불법적으로 유출한 범죄자를 찾아 처벌함으로써 공공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법익도 중요하다고 인정한다. 미국 등 선진국도 형사사건의 경우에 특별한 조건 아래서만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을 인정하고 있다.

국정원 유출 경위 먼저 수사해야

그 조건은 크게 3가지다. 수사기관이 ①수사 중인 범죄와 명백하게 관련 있는 정보를 기자가 가지고 있고 ②기자에게서 얻으려는 정보를 다른 출처에서 입수하기 불가능하며 ③기자의 정보가 수사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근거를 동시에 제시하고 입증할 수 있을 때이다.

검찰이 이런 근거를 동아일보에 제시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보고서를 작성·소장하고 있는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졌는지도 불분명하다. 만약 검찰이 위의 근거들을 제시했다면 국민에게도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검찰의 압수수색 시도는 수사 편의주의에 따른 과잉 조치, 법원의 수색영장 발부도 안이하고 성급한 조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 언론 자유의 목적론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새기자.

이민웅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교수·언론학 minw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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