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타지 사무드라 호텔. 창밖으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도양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렸다. 바다를 배경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용재(보존과학) 학예연구사의 열강(熱講)이 이어졌다.
“아, 그렇구나.”
강의를 들던 스리랑카 기록문화재 관계자 100여 명이 나지막이 탄성을 터뜨렸다. 기록문화재 보존의 접근 방법을 깨친 것이다. 이번엔 국가기록원의 최찬호 연구사가 나섰다.
“보존 여건이 열악하다고 해도 빛 차단이나 마이크로필름 촬영과 같은 기본적인 작업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훼손된 책을 본드로 붙여 놓은 걸 보았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기록물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될 겁니다.”
일종의 질책이었다. 스리랑카 교육부의 지역기록문화재 보존 담당 라크스미 말라라가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잠자고 있던 저의 보존 정신을 일깨워 주시는군요.”
○한국, 아시아의 기록문화재 보존을 이끈다
이번 워크숍은 유네스코 한국위의 ‘아시아 기록유산 보존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몽골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권에서 지한파(知韓派)를 육성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특히 일본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스리랑카에 한국의 문화를 전한다는 의미도 크다.
워크숍엔 유네스코 한국위, 국립문화재연구소, 국가기록원, 국립중앙도서관, 청주고인쇄박물관, 충남대의 기록문화재 전문가 10여 명이 참가했다. 스리랑카 측에서는 말리카 카루나라투나 문화유산부 차관 등 100여 명이 매일 자리를 가득 메웠다.
○스리랑카, 한국의 한지에 빠지다
“지금 화면으로 보시는 것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한국의 ‘직지심경’인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입니다.”
지난달 25일, 타지 사무드라 호텔 실내가 웅성거렸다.
“뭐라고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청주고인쇄박물관의 라경준 학예연구사가 말을 이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 금속활자를 찍어 간행한 책이니, 독일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서 간행된 겁니다.”
라 연구사는 내친 김에 한지(韓紙)를 이용해 한국의 전통 책자를 만드는 과정을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이미 서영범(임산공학) 충남대 교수의 강의를 들을 때부터 “한지는 어떻게 만드느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지를 접어 표지를 만들고 한지를 꼬아 끈을 만들고 송곳을 두드려 구멍을 뚫고 풀을 칠하고…. 스리랑카 차향(茶香) 속으로 한지의 향기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콜롬보=글·사진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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