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前통일 “작년 8월에도 남북정상회담 추진”

  • 입력 2007년 7월 2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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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4일 “2006년 8월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핵실험을 막고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상부에 보고하고 답을 주겠다’고 한 뒤 호응이 없어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회담 제의 경로에 대해 “공식 채널”이라고만 했다. 회담 개최 희망 시기를 특정해 제안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묻지 말라. 이미 ‘히스토리(과거)’가 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의 이날 ‘고백’으로 노무현 정부가 “정상회담은 상대가 있는 것”이라며 겉으로는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틈만 나면 북한을 향해 ‘러브 콜’을 보내왔음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 지난해 8월에 무슨 일이?

이 전 장관은 본보와의 통화에 앞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사일 발사가 결국 핵실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해 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했다”며 “노무현 대통령도 어떤 담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정상회담을 추진한 이유에 대해 당시 국가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남북관계를 통한 한반도 위기 돌파라는 일종의 ‘투 트랙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 제안은 노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송민순 대통령외교안보실장 등 외교안보 핵심 라인이 공유하고 있었다”며 “정부는 북한에 대해 정상회담 제의를, 미국에 대해서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각각 설득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2005년 6월 방북했던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원칙에 합의했고, 북한이 시기만 정하지 못했을 뿐 한반도나 제3국에서 여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자금을 동결했던 것이 남북 정상회담의 불발 요인이 됐다며 미국 책임론도 제기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강경했던 미국은 사실상 이를(핵실험을)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 양파 껍질 벗겨지듯 밝혀지는 진실들

현 정부는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9월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그해 8월 광복 60주년 8·15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남측을 찾았던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도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06년 4월 평양에서 열렸던 제18차 남북 장관급 회담 때에도 이 전 장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2000년 미국을 방문했던 조명록 차수의 특사 방문을 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공식 라인’을 이용한 정상회담 러브 콜이 무산되고 그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몸이 달았던 노무현 정부는 결국 ‘비선 접촉’까지 추진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는 핵실험 직후인 지난해 10월 20일 대북사업가인 권오홍 씨의 주선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이호남 참사를 면담하고 정상회담을 ‘대장놀이’라는 암호로 부르며 추진을 논의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끝났다.

○ 실현 가능성은 있었을까?

노무현 정부의 정상회담 제안이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다. 이 전 장관이 밝힌 정상회담 제안 시점은 지난해 7월 5일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포함한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정부는 미사일 발사 직후 즉각 쌀과 비료 지원 중단을 선언했고, 같은 달 11∼13일 부산에서 열렸던 제19차 장관급 회담에서도 북한은 “선군(先軍)이 귀측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는 망언을 해 회의가 하루 전에 종결됐다.

대북 쌀 및 비료 지원마저 중단됐을 정도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낮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또한 이번 이 전 장관의 정상회담 추진 고백으로 현 정부가 ‘선(先)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후(後) 남북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원칙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비밀리에 정상회담을 추진했음도 드러났다.

노 대통령과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듯 정상회담에 관해 거짓말로 일관했다.

노 대통령은 올해 1월에 “정상회담에 대해 아무 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포착해 쓰라”고 말했고, 2004년 12월에는 “가능성이 낮은 일에 정력을 기울여 노력하지 않는 게 현명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현재 가능성을 낮게 본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도 지난해 6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2006년) 10월에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 정상회담을 뒤에서 추진하고 있습니까”라는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의 질문에 “현재 관련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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