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홍역 게임

  • 입력 2007년 5월 31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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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형 전염병인 홍역이 일본을 강타했다. 올해 들어 도쿄(東京) 도를 중심으로 발생한 홍역은 사이타마(埼玉) 현 등 인근 지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도쿄 도에서는 초중고교생 감염자만 250명이 넘어 5개 학교가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대학생 감염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와세다대를 비롯한 도쿄 소재 7, 8개 대학이 캠퍼스를 폐쇄했을 정도니 ‘선진 일본’의 이미지가 크게 구겨졌다.

▷홍역은 선진국에서 공식적으론 퇴치된 전염병이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홍역이 집단 발생한 것은 백신접종률과 관계있다. 1978년 홍역 백신 의무접종이 폐지돼 현재 10대와 20대의 10%가량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1998년 MMR(홍역 이하선염 풍진)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과학전문지 ‘랜싯’의 논문 발표 이후 백신 접종률은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6년 후 논문 저자들은 내용의 오류를 시인했고 논문은 철회됐다.

▷한 사회에서 홍역 같은 전염병이 확산되는 데는 예방접종률을 둘러싼 복잡한 게임이 작동한다. 백신 자체의 부작용이나 접종 때의 쇼크 위험 때문에 대다수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만은 예방주사를 맞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중에 홍역에 걸리지 않으려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전부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결국 모든 부모가 ‘내 아이부터’라는 마음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누구의 아이도 홍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게임은 한국에서도 작동 중인 듯하다. 4월 이후 40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지난해 발병자 25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몇 년 전 MMR 접종을 한 유아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부모들이 예방접종을 기피해 접종률이 떨어진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인구 100만 명당 환자 1명 이하’인 홍역퇴치국가의 지위도 유지 못할까 우려된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 환자와 접촉해도 72시간 내에 백신을 맞으면 된다니, 모든 부모가 ‘내 아이만은’ 하는 이기심부터 버릴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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