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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제리 ‘스파이스 걸스’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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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제리 ‘스파이스 걸스’ 탈퇴

입력 2007-05-31 03:00수정 2009-09-2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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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사귀길 원해? 그렇다면 내 말 똑바로 들어.(You wanna get with me, you gotta listen carefully)”(‘Wannabe’ 중에서)

그리 예쁜 것도 아니었다. 보이밴드나 걸밴드와 그다지 차이도 없었다. 오디션을 통해 모인 건 마찬가지. 춤이나 가창력도 글쎄…. 하지만 그들은 특출한 무기를 갖고 있었다. ‘정체성(identity)’이란 강력한 힘이다.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1994년 데뷔한 5인조 여성 밴드. 4년 만에 앨범 판매액만 3000만 달러가 넘었다. 비틀스 이후 가장 성공한 영국 가수. ‘양념 소녀들’은 세상을 요리했다. 브릿 팝(Brit pop)의 부활. 노장 비지스나 받는 영국 팝 어워드 공로상을 데뷔 5년 만에 수상했다.

성공의 비밀은 ‘요리법’에 있었다. 흔한 외모와 실력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야채였다. 천방지축, 공주병, 새침데기 등의 멤버 개성은 익숙하지만 맛깔스러운 소스였다. 여기에 거침없는 입담 한 방울. 톡 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샐러드 요리가 만들어졌다.

완성된 요리는 ‘걸 파워(Girl Power)’로 포장됐다. “못난 여자가 싫다고. 너희 못난 남자들이 더 재수 없어.”(영국 iTV와의 인터뷰 중) 남성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야심 찬 선언. 여성들의 ‘워너비(wannabe)’가 됐다.

그 중심엔 멤버 제리 할리웰이 있었다. ‘진저 스파이스’(제리의 애칭)는 밴드의 정신을 대변했다. 하고픈 말은 다 했고 원하면 도전했다.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했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자립심 강하고 독립적인 ‘빨강 머리(ginger) 앤’의 현신(現身)이었다.

하지만 너무 강한 정체성은 균열을 몰고 왔다. 음악적으로 밴드를 이끌던 멜라니 B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음악과 정체성 간의 미묘한 신경전. 1998년 5월 31일 결국 제리는 팀 탈퇴를 선언했다.

“스파이스 걸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우정은 영원할 것이다.”(탈퇴 관련 공식 코멘트)

우정은 변치 않을지언정 태양은 지고 있었다. 양념 하나 빠졌을 뿐인데 싱거워졌다. 나간 제리는 천방지축 콘셉트를 버리고 도도한 섹시녀로 변신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솔로로 흩어졌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소녀에서 아줌마로 변해 갔다.

팬들도 꿈에서 깨어났다. 세기 말의 이별 싱글은 몇 주 만에 차트에서 내려왔다. 세상에 뿌려진 양념은 세월에 씻겨 갔다. 양념은 함께 버무려질 때 입맛을 돋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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