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여하튼 케냐로” 육상연맹의 외고집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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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선수에게 고지 훈련은 필수다. 아프리카의 케냐 선수들이 잘 달리는 이유를 분석해 보니 해발 2000m 이상 고지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란 결론이 나왔다. 산소가 희박한 고지에서 훈련하면 혈액 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늘어나 최대 산소 섭취 능력이 좋아진다. 최대 산소 섭취량이 높다는 것은 바로 지구력이 좋다는 뜻. 이런 점에서 케냐는 마라톤 훈련의 메카로 불릴 만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선수들은 대부분 케냐에서 전지훈련을 한다.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 신필렬)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비해 경기력 향상의 일환으로 마라톤 유망주들을 케냐 엘도레트에 파견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마라톤을 집중 육성해 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반대에 부닥쳐 ‘반쪽’이 됐다. 6개월 일정이 3개월로 줄었고 그나마 3개월도 2개월은 케냐에서, 1개월은 중국 쿤밍에서 훈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고교 대학 실업 선수들을 두루 파견하려 했지만 대학 선수만 가게 됐다. 고교와 실업 팀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학 선수도 건국대와 한국체대, 한양대 선수 6명이 선발됐지만 한양대가 빠지는 바람에 6월 말에 4명만 가게 됐다.

마라톤인들은 “음식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선수들이 적응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아시아 문화권인 쿤밍이라는 좋은 곳이 있는데 굳이 케냐로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연맹은 “쿤밍은 해발이 1800m밖에 안 되는 반면 엘도레트는 2300m나 된다. 고지훈련은 2000m 이상에서 해야 효과적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인환 삼성전자 감독은 “운동생리학적으로 1600m만 되면 고지훈련 효과를 볼 수 있다. 쿤밍에서도 선수들이 힘들어하는데 엘도레트에선 훈련 자체를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맹은 반대 의견이 많고 참가 희망자도 별로 없지만 ‘케냐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태세다. 마라톤에 대한 연맹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무모한 투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 쉽다. 케냐에서 훈련한다고 케냐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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