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중섭]세계 9위 한국어, 내실은 몇 위일까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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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한국어 교육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어는 변방의 작은 민족어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어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그리고 ‘한류 열풍’ 속에서 한국어는 날이 갈수록 국제적 위상을 높여 가는 중이다.

최근 발표된 유엔의 세계 언어 조사 자료에서 확인되듯, 사용 인구 면에서 세계 15위 정도를 차지하는 우리말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중심으로 볼 때 중요도 및 언어 경쟁력 면에서 스페인어 일본어 아랍어 등에 이어 9위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어는 한류 열풍을 타고 아시아는 물론 유럽,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 60여 개국 660여 개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됐고 여러 지역에서 한국어 경연대회가 열린다.

국내에도 우리말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이 계속 증가해 대학 내 한국어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한국어 교육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언어가 되고, 이에 발맞춰 한국어 교육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는 현실은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하는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긍정적 현상의 이면에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언어적 위상에도 거품이 끼어 있는 것이다.

한국어 전파와 한국어 교육이 빠르게 발전해 온 만큼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해 내실이 다져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게다가 한국어 보급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 사업이 기관 간 정보 공유와 협의, 협력 없이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어 및 한국어 교육의 발전 방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 감독할 주체가 없다는 뜻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국내외적으로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수많은 한국어 관련 행사가 실시되면서 한국어 교재도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양적 확대에 비해 질적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문제점을 직시하고 자성하는 한편 내실을 기하기 위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한국어 교육 연구 사업이 한국어 교육의 내적 발전과 성숙을 위한 방향으로 특성화 및 전문화가 돼야 한다. 겉만 다르고 속은 동일한 교육 자료가 아니라 학습자의 성향에 따라 특성화된 교육 자료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어 관련 사업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끌어갈 주체를 제대로 세워 정책적 지원 방향을 도출시키고 한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 프랑스나 독일 국민의 자국어 사랑은 우리 국민에게 좋은 귀감이다. 국민 모두가 우리말 사랑의 전도사가 되자. 인터넷 언어와 신조어로 파괴되고 무분별한 외래어와 외국어 사용으로 병든 우리말을 되살리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적인 관심을 한데 모으고 언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가 한국어의 외연을 넓혀 온 시기라면 이제부터는 한국어의 내연을 확장시킬 시기이다. 우리말의 진정한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서는 쓴 약을 삼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놓쳐 온 것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개선하자. 지금까지 우리말이 걸어온 길이 1차선의 구불구불한 국도였다면 이제는 세계를 향하는 큰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김중섭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국제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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