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다시 보는 국수전 명승부…최초의 여성 도전자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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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시작으로 들떴던 2000년 벽두, 한국 바둑계에 특별한 손님이 왔다. 국수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도전무대에 등장한 여성기사. 세계 바둑사를 통틀어도 여성 도전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이자 최고단인 그는 ‘반상의 보트 피플’이었다.

중국에서 쫓겨난 남편 장주주(江鑄久) 9단과 미국, 일본 등지를 유랑민처럼 떠돌다가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정착한 때가 1999년 봄. 일찍이 ‘철녀(鐵女)’ ‘아마조네스의 여전사’로 불리며 여자 세계대회를 독식해 왔던 그가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 국내 여성 바둑을 점령하리란 것은 누구나 예상한 바다. 하지만 9개월 만에 한국바둑의 대명사인 국수전 도전자로 나설 줄은 아무도 몰랐다. 더군다나 도전자 결정전의 상대는 이창호 9단이었다.

1992년 응씨배에서 바둑황제의 꿈을 안고 출전한 황태자 이창호에게 난생 처음 여자의 매운 손맛을 보여주었던 그 아주머니. 그때 16강전에서 탈락하고 돌아오는 비행길에서 16세 소년 이창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바둑을 두고 싶지 않다”고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나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선 이창호 9단에게 또다시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이창호 9단을 꺾고 바둑사상 최초의 여성 도전자가 된 것만 해도 밀레니엄 첫 인물감이었다.

여자라고 깔보다가는 큰코다친다. 루이 9단의 바둑을 보면 이 말이 절로 나온다. 무시무시한 싸움꾼에 힘이 천하장사다. ‘싸움의 신(戰神)’이라는 조훈현 국수조차 쩔쩔 매고 있다. 흑 51로 가르고 나왔을 때 백 52로 어깨 짚은 수가 멋져 보이나 바둑을 꼬이게 한 실착이었다. 백 ‘가’로 두는 게 무난했다.

흑 53부터 여전사의 양동작전이 불을 뿜기 시작한다. 흑 55는 힘을 비축한 수. 이런 수가 더 무섭다. 참고도 흑 1의 이단젖힘은 백이 8까지 연결해 편하다. 흑 61, 63으로 검을 높이 빼들었다.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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