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쌀지원 유보'에 의외로 조용

  • 입력 2007년 5월 30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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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북한의 '2·13 합의' 미이행을 이유로 대북 식량차관 전달시기를 유보하기로 결정했지만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북측 대표단은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권호웅 북측 단장은 29일 환영만찬에서 "민족 의사를 중시하고 민족공동 이익을 앞세운다면 북남관계는 그 어떤 한파에도 얼지 않을 것이며 온갖 외풍에도 끄떡없이 줄기차게 전진할 것"이라고 민족공조를 강조함으로써 식량차관 지원이 제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또 30일 전체회의에서는 2·13 합의의 조속한 이행을 요구하는 남측에 대해 합의 이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 때문이라며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의 미해결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주장했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북측이 아직까지 쌀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부산에서 열린 제19차 장관급회담에서는 첫날 전체회의 때부터 쌀 차관 50만t과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남측에서 냉랭한 입장을 보이자 일정을 하루 앞당겨 평양으로 귀환했었다.

북측의 달라진 태도는 작년과는 상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식량지원의 유보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식량차관계약서 초안을 만들어 북측에 전달했고 북측은 이 초안에 서명까지 해서 남쪽에 내려보낸 상황에서 식량지원 자체가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식량차관계약서는 식량 지원 시기 등은 담기지 않지만 식량의 양과 액수 등이 명시됨으로써 대북지원에 대한 남쪽의 원칙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문서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식량차관계약서가 오고간 만큼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우리의 입장은 분명히 한 것"이라며 "북쪽도 이러한 사정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올해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3차 회의과정에서 남측이 '2·13 합의' 이행을 식량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수 차례 얘기했던 만큼 북측도 남측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남쪽에서 계약서까지 보내온 상황에서 굳이 쌀에 매달림으로써 궁색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 어떤 가치보다 체제에 대한 자존심을 앞세우고 있는 북한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여기에다 북측이 앞으로 남북관계를 유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을 감안하면 식량지원문제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파국을 맞게 된다면 남북관계가 상당기간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북간에 합의한 경공업 원자재 8000만 달러어치나 가을비료 등의 지원도 제때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측이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 간에 이뤄지는 수석대표 단독 접촉 등을 통해 비공개로 남측의 조속한 식량차관 지원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단독 접촉에서는 북쪽 기관들이 남쪽 기업들로부터 받지 못한 미수금을 받게 해달라는 등 스스럼 없는 대화가 오갔었다는 점에서 '2·13 합의' 미이행을 미국 책임으로 돌리면서 식량 지원이 약속한 일정에 따라 이뤄지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번 회담을 앞두고 식량지원 유보 결정에 대해 "민족 내부의 상부상조에 스스로 장애를 조성한 것"이라며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는 했지만 '파국'등의 거친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그동안의 관행에 비춰볼 때 상당히 절제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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