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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성호]이제 대한민국의 세종로를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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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성호]이제 대한민국의 세종로를 이야기하자

입력 2007-05-30 03:02수정 2009-09-2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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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샹젤리제, 빈에 링슈트라세가 있다면 서울에는 세종로가 있다. 심훈 선생이 광복의 그날이 오면 울며 뛰며 뒹굴리라던 육조(六曹) 앞 넓은 길,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 상징 가로(街路)’다. 일제가 총독부 신축과 광화문 이전 그리고 기축선 뒤틀기를 통해 이 거리를 모질게 학대한 이유도 그 상징적 의미를 아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세종로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려는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 못살던 시절 어설프게 복원한 광화문을 해체하여 목조로 원형을 복구하려는 문화재청 사업이 2009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에 발맞추어 서울시 역시 세종로 중앙에 광장을 조성하여 예전 주작대로(朱雀大路)의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는 사업을 시작했다. 작년 세밑에 기본계획안이 발표되었고, 6월 5일 조성 아이디어 현상공모가 마감되는 대로 같은 달 15일 심사를 거쳐 확정안이 나올 예정이다.

광화문 자체를 복구한다는 데야 갑론을박이 있을 수 없다. 광화문 앞 월대(月臺)의 복원도 현실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만하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으로 내려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의 1200만 관광객 달성을 위해서는 우리만의 전통문화 복원이 필수”라는 사업 추진의 변(辨)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광화문광장 복원 아닌 재창조를

광화문광장은 복원의 대상이 아니다. 광화문을 출발해 황토현(黃土峴)에서 끝나는 조선시대 ‘육조거리’는 진퇴가 막혀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분명 ‘육조마당’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닫힌 광장은 일제가 세종로의 물꼬를 꺾어 남쪽의 태평로와 연결하면서 열린 가로로 변해 버렸다. 또한 1926년 총독부 청사가 들어선 언저리의 지도와 사진을 보면 남아 있던 행랑들마저 다 철거된 이 거리가 사실상 텅 비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바 있는 지금의 세종로는 사실상 무(無)에서 창조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이번 사업의 목표도 ‘광장의 복원’보다는 오히려 ‘광장의 재창조’로 설정하는 게 현실적이다.

목표가 공간의 재창조라면 역사적 고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현재에 대한 해석이다. 그러나 세종로의 공간적 맥락에 대한 서울시의 이해는 사뭇 진부하게만 들린다. 세종로의 역사는 몰락한 봉건왕조의 어가(御街), 포악한 제국의 열병로(閱兵路)에서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이어져,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구(舊) 중앙청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 해병들의 벅찬 숨소리, 그리고 독재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젊은 학도들의 성난 사자후가 아직도 이 거리에 메아리치고 있다. 그 메아리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민중의 함성으로, 또 거리응원을 통해 우리 모두 하나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시민의 환성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세종로에 공명(共鳴)하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이럴진대 광화문광장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일제 잔재 청산과 육조마당 재현에 그치는 것은 안이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이미 사라진 전통공간의 상품화와 그를 통한 1200만 외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상술을 너무 쉽게 얘기한다. 그 영악함에 가려 대한민국 현대사의 우여곡절에 대한 심장(深長)한 성찰은 쉬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논란거리인 ‘가까운 과거’를 광장으로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속사정이 짐작은 간다. 그렇다고 해서 광화문광장의 조성이 겨우 상품화된 전통에 기댄 조경사업이나 관광명소 개발 수준에 머물 수는 없다. 휑한 잔디밭에 모여 전통행사를 시연한다고 해서 그 공터가 곧 진정한 의미의 광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 때도 됐다. 더구나 세종로는 시청 앞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우리의 ‘국가 상징 가로’가 아니던가.

건축가 좋은 아이디어 공모 기대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 마지막 기대를 이번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할 속 깊은 건축가들에게 걸어 본다. 심사에 참여할 전문가들의 밝은 눈을 믿어 본다. 아울러 민선 4기 현(現) 시장이 추구하는 ‘새로운 시정(市政)’이 어떤 차별성을 보일지도 이참에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우리도 ‘먼 과거’ 속 주작대로는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자. 선조의 음덕(蔭德)을 보려는 장삿속은 미련 없이 비우자. 대신 대한민국 60년의 웃음과 눈물이 녹아 있는 우리들의 세종로, 이제 우리 이 거리를 얘기하자.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연세대교수·정치철학 sunghoki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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