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CB’ 항소심도 유죄…주주 공모여부는 판단 안해

  • 입력 2007년 5월 3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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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을 불러일으킨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 허태학(63) 박노빈(61) 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조희대)는 CB 저가 발행을 공모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허 씨와 박 씨에게 29일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 원을 선고했다.

허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던 1심 판결에 비해 박 씨의 형량이 무거워졌고 별도로 거액의 벌금까지 부과한 것이다.

재판부는 CB 저가 발행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그룹 차원의 공모로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CB 저가 발행이 이 회장의 장남 재용(삼성전자 전무) 씨 등에게 CB를 몰아줘 지배권을 변동시킨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경영권 승계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혀 상고심 공판 과정에서 뜨거운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또한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됨에 따라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이 회장 소환 조사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삼성 측은 “재판부가 1심과 달리 공모 부분 판단을 유보한 만큼 추가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에버랜드 CB 가격은 모든 사정을 고려해 가장 낮게 책정해도 1만4825원 이상”이라며 “허 씨와 박 씨는 공모해 주당 7700원에 CB를 발행해 재용 씨 등에게 넘겼기 때문에 회사에 최소한 89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밝혔다.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했던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손해액을 이같이 산정하고 손해액 규모에 따라 가중 처벌이 가능한 특경가법상 배임죄를 적용했다.

검찰 측은 회사의 손해액이 최소한 969억 원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허 씨와 박 씨는 1996년 10월 이사회에서 주주배정 방식으로 CB를 발행하기로 의결한 뒤 주주들이 실권하자 재용 씨 등 이 회장의 자녀 4명에게 제3자 배정 방식으로 CB 125만4777주를 몰아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한편 삼성 측은 이날 오후 ‘피고인과 변호인의 입장’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항소심 판결은 법리상 문제가 많은 만큼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며 “대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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