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기사송고실 폐쇄검토’ 지시 파장

  • 입력 2007년 5월 3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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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대통령의 빈자리’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계속 정부 방안에 반발할 경우 통합브리핑실 외에 기자송고실마저 없앨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참모회의를 하느라 국무회의에 늦게 참석했다. 김경제 기자
국무회의 ‘대통령의 빈자리’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계속 정부 방안에 반발할 경우 통합브리핑실 외에 기자송고실마저 없앨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참모회의를 하느라 국무회의에 늦게 참석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기사송고실 폐쇄를 검토하라고 지시해 기자실 통폐합을 둘러싼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을 주장한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정부 조치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라 이 같은 전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노 대통령의 기사송고실 폐쇄 검토 지시는 현재 정부 부처에 있는 37개 브리핑룸을 3개로 통폐합하는 데 이어 브리핑룸에 붙어 있는 기사송고용 시설까지 없애라는 얘기다.

결국 평소 마감시간과 싸워야 하는 기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브리핑만 들은 뒤 청사 밖으로 나와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강경 발언 배경에 언론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언론에 밀릴 경우 바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근거 없는 주장=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세계 각국의 객관적 실태를 보도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별도의 송고실이 없다 △일부 부처에서 지난날의 불합리한 현상이 되살아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시각에 근거한 터무니없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최대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백악관 출입기자를 지낸 미국 아메리칸대 공공정책 스쿨의 리처드 베네디토(65) 교수는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미국 정부 부처에는 기자실이 있고 기자의 공무원 접촉도 자유롭다. 백악관을 비롯해 상무부 재무부 보건복지부는 물론이고 작은 기관인 재향군인회 같은 곳에도 기자실이 있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찰서에도 브리핑룸과 프레스룸, 공보관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홍보처는 22일 ‘일부 기자실이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국무부 국방부 법무부 농무부 교통부 등 5개 기관에만 브리핑실이 설치돼 있으며, 기자실은 국무부 국방부 법무부 등 3개 기관에만 설치돼 있다’고 밝혔다.

또 기자단이 활성화된 일본은 ‘후진국형’이라고 해외 사례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왜 이러나=노 대통령의 ‘초강수’에는 밀려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언론과 언론 유관단체,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가 이번 정부 조치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타협 쪽으로 선회할 경우 레임덕을 촉발할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정치권은 분석했다.

특히 ‘개방형 브리핑제’가 현 정부의 상징적 언론정책이라는 점도 노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사송고실을 없애면=현재 각 부처 기자실은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로 운영된다. 기사송고실은 말 그대로 기사를 쓰고 전송하는 장소다. 기사송고실을 없앨 경우 기자들은 브리핑을 듣자마자 정부청사 밖으로 나와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마감 시간에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는 기사 작성 및 전송이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욱이 정부 브리핑만으로 취재가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브리핑이 끝난 뒤 기사 작성을 위해 청사 밖으로 나가게 되면 심층 취재는 고사하고 단순 현안조차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송고실까지 없앨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할 최소한의 언론 권리조차 박탈하겠다는 협박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처의 홍보 관계자는 “말 그대로 기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겠다는 발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팩트(fact) 확인과 기사 작성에 분초를 다투는 취재 환경을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최근 언론 관련 발언록
시기발 언 내 용
2월 28일방송이든 신문이든 기자실에 앉아서 ‘이거 어떻게 써야 하나’고 하면 ‘이렇게 써야 한다’고 의견을 나눈다.(인터넷 신문협회 토론회)
1월 31일언론은 선수가 아닌데 요새 일부 언론들을 보면 운동장에 내려와서 공을 찬다. 그것만 해도 뭐한데 반칙까지 한다.(지역 언론 편집국장 간담회)
1월 23일부동산(정책을 비판하는) 신문들이 흔들지 않았으면 더 강력한 정책이 안 나왔을 텐데 무력화시키니까 더 센 정책이 나왔다.(신년연설)
1월 16일 몇몇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을 보도하지 않고 보도자료를 자기들이 가공하고 담합하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는지 조사해 보고하라.(국무회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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