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따 모스크바] 러 신흥재벌들 미술품 ‘묻지마 싹쓸이’

  • 입력 2007년 5월 3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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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큰손’이 많아 모스크바 현지 경매장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의 마크 폴티모어 부회장은 23일 모스크바 경매장 개장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사장에 참석한 소더비 임원들은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미술품 시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더비의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거래된 예술품은 2001년 900만 달러(83억7000만 원)에서 지난해 1억5300만 달러(1422억9000만 원)로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예술품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도입한 뒤 벼락부자가 된 신흥 재벌들이다.

석유회사 TNK-BP의 대주주이자 알루미늄기업 ‘수알’ 회장인 빅토르 벡셀베르크 씨는 2004년 보석이 박힌 ‘파베르제의 달걀’ 1억 달러어치를 사들여 국가에 기증했다. 파베르제의 달걀은 러시아 황제(차르)였던 알렉산드르 3세가 1885년 부활절에 황후에게 선물하기 위해 보석 세공의 명장 칼 파베르제에게 명령해 만든 50개의 달걀 모양 장식품. 벡셀베르크 씨는 경매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미 포브스 가문에서 이를 직접 구매했다.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뱅크의 표트르 아벤 회장은 20세기 초에 유행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품(전위 미술품)을 차례로 사들여 모스크바 근교 자신의 별장에다 전시하고 있다.

러시아 부유층의 예술품 투자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단절된 전통을 되살린다는 말도 나온다. 제정러시아 당시에는 황제와 귀족들이 희귀한 예술품을 친지에게 선물로 보내거나 개인 박물관에 보관하는 풍습을 다른 계층이 흉내 낼 수 없는 특권으로 여겼다.

신흥 재벌의 돈이 경매 시장에 몰리면서 예술품 가격도 급등하지만 러시아 시장에서는 신흥 재벌의 ‘싹쓸이 구매’로 예술품 가격이 왜곡된다고 서방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소더비 직원은 “다른 나라에서는 값싸게 판매되는 정물화 가격이 러시아에서는 수십 배 부풀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푸시킨 박물관 부원장인 지나이다 보나미 씨는 “러시아 신흥 재벌은 투자에만 관심이 있지 예술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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