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아름다운 前職을 보고 싶다

  • 입력 2007년 5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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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 전직 인사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폭행 사건과 관련해 현직 경찰 간부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현 정치권과 유권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두 경우는 그 성격이 다르지만 과연 적절한 전직의 자세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는 데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최 전 청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찰청 감사관실 조사에서 밝혀졌듯, 현재 한화그룹 고문인 최 전 청장은 수사 지휘선상의 간부들과 수차례 통화하며 사건 관련 문의뿐 아니라 청탁까지 했다고 한다. 이 통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의 전 직장 후배들은 물론 한때 그가 수장으로 이끌던 조직 자체가 큰 위기에 빠졌다. 경찰 전체의 명예 실추는 물론이고 국민의 시선도 따갑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전직의 연고가 현 조직을 망쳐 놓은 경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지만 이번 사건은 특히나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이와 달리 김 전 대통령의 경우는 얼핏 보면 부적절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최 전 청장처럼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했다. 최 전 청장처럼 알려져서는 안 될 것을 알려고 한 것도, 응당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고 억누른 것도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이라고 침묵만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김 전 대통령이 행한 일련의 발언에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약간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할 때, 전직 대통령이 무언가를 목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석에서의 대화 수준이 아니라 정치권이나 국민에게 널리 알려질 것을 의도해 공개적으로 행한 발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 원리에 들어 있다.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표자들은 정해진 임기 동안만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최고 수장인 대통령의 임기는 특정 연한을 넘을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의 변동이 생기기 어려워 결국 독재와 부패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한국 정치사가 익히 보여 준다. 대표자의 정기적 교체와 새 국정운영 체제의 작동은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직이 아니므로 이러저러한 정치적 발언을 해도 별 여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안이하다. 전직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과거 지지를 보냈던 수많은 국민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 원리의 훼손은 물론이다.

전직 고위 공무원이 과거 연고를 내세워 각종 압력과 청탁을 자행해서는 안 되듯, 전직 대통령이 한때 누렸던 정치권 및 유권자와의 연고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도 곤란하다. 퇴임 후 ‘해비탯 운동’을 이끌며 자선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지미 카터나, 부인 힐러리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뿐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있는 빌 클린턴의 예를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직 공무원이나 전직 대통령은 자기가 몸담았던 행정부나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않을 때 아름다운 원로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국민 눈에 아름답게 비치며 퇴임 이후를 보낸다면, 원로 본인에게도 좋지만 정치 신뢰의 회복과 민주주의 원리의 실천, 새로움에 대한 지향 등 여러 긍정적 의미에서 결국 나라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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