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진출 외국기업 R&D센터 105곳 조사해 보니…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코멘트
외국계 R&D센터 유치는 했지만…경기도와 성남시는 외국계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구 ‘킨스타워’의 12개 층을 외국계 R&D센터 전용 공간으로 할애했다. 임대료 할인, 세금 감면, 인건비 지원 등의 혜택이 제공됐지만 총 6곳의 외국계 R&D센터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올해 초 인텔과 내셔널세미컨덕터가 철수해 이제는 4곳만 남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외국계 R&D센터 유치는 했지만…
경기도와 성남시는 외국계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구 ‘킨스타워’의 12개 층을 외국계 R&D센터 전용 공간으로 할애했다. 임대료 할인, 세금 감면, 인건비 지원 등의 혜택이 제공됐지만 총 6곳의 외국계 R&D센터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올해 초 인텔과 내셔널세미컨덕터가 철수해 이제는 4곳만 남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내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해 운영 중인 외국계 기업 중 한국 기업이나 연구소로 기술 이전을 한 번이라도 한 곳은 10곳 중 2곳도 채 안 되는 1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R&D센터의 55.2%가 본사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R&D센터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인력은 전체 인력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실은 KOTRA가 작성한 ‘외국인 투자기업 R&D 현황조사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KOTRA가 한국갤럽과 함께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의 R&D센터 10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현재 국내에는 IBM 지멘스 HP 구글 프라운호퍼 파스퇴르 등 유명 외국계 기업의 R&D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KOTRA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등록된 외국인 지분이 10% 이상 되는 연구소 중 사업영위 여부, 외국인의 투자 및 경영 참여 여부를 토대로 375개 연구소를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고 이 중 105곳이 조사에 응했다.

○기술 이전-도입-개발 실적 미미

외국계 R&D센터 국내 유치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이 중심이 돼 진행해 왔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부터 외국계 기업들의 R&D센터를 유치해 ‘동북아 R&D 허브’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참여정부 초대 정통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전 장관은 “외국계 R&D센터들은 첨단 원천기술 연구를 주목적으로 하는 R&D센터이며 이들 기업은 기술을 많이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는 R&D센터를 설립하는 외국계 기업 중 투자금액이 500만 달러 이상이며 연구인력이 10명 이상일 경우 조세 감면, 연구인력이 20명 이상일 경우 외국인 투자비율만큼 현금 지원도 해 줬다.

그런데도 국내 외국계 기업 R&D센터들은 기술 이전과 기술 도입은 물론 국내에서의 기술 개발 실적도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KOTRA 보고서를 과기부에서 입수한 통합신당 변재일 의원은 “처음부터 외국계 기업의 R&D센터들은 한국을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실험하기 좋은 ‘테스트 베드’ 정도로만 여긴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각종 혜택을 주고 구걸하다시피 하며 이들을 유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기술 개발을 통해 특허를 하나라도 등록한 적이 있다고 답한 기업도 절반(50.5%)에 불과했다. 특허 등록을 한 적이 있는 기업 중에도 56.6%가 총등록 건수가 5건 미만이었고 특허 출원 건수도 5건 미만인 곳이 58.5%나 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무 수석연구원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기업 R&D센터가 정부의 기대와 달리 원천기술을 들여오거나 새로운 기술 연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원천기술과 기초연구 관심 없어

조사결과 국내에 있는 외국계 R&D센터들은 정부가 기대하는 원천기술 개발이나 기초과학 연구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R&D센터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본사에서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한국 시장에 맞게 기능을 조절하는 ‘현지적응형 R&D센터’라고 응답한 비율이 60%였다. 본사에서는 구하기 힘든 기술을 연구하는 ‘본사지원형 R&D센터’라는 응답은 35.2%에 그쳤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개발된 제품을 현지 시장에 맞게 개량하는 업무를 위해 R&D센터를 설립했다는 기업이 88.6%(복수응답 가능)로 가장 많았다. 원천기술이나 기초연구를 위해 설립했다는 응답은 26.7%에 그쳤다.

2004년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했다가 올해 1월 철수한 반도체기업 인텔도 당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으로 홈네트워크 관련 원천기술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텔과 ETRI의 실제 연구 형태를 보면 양사는 연구 단계에서 각사의 기존 기술을 조합하는 식으로 연구를 수행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ETRI는 인텔에서 연구인력이 몇 명이나 참여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KOTRA 신산업유치팀의 박용수 팀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외국계 R&D센터를 유치했지만 이들의 기술 이전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이들이 국내에서 더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하도록 유도하고 적극적으로 기술 이전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연구원 비중 1%… 그나마 철수하는 곳도

○“한국 기술개발 인력 부족” 지적

R&D센터 중 연구개발 인력이 50명 이상 되는 곳은 15.2%에 불과했다. 10명 이상 50명 미만인 R&D센터는 45.7%였고, 10명 미만인 R&D센터도 39%나 됐다.

전자부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N사의 경우 2년 전 국내에 R&D센터를 설립했다가 올해 철수했다. 이 기업에서 연구를 담당했던 인력은 10명에 불과했다. 인텔도 국내 R&D센터에서 연구를 담당했던 인력은 20명 정도였다.

외국인 인력이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핵심 기술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외국계 기업의 본사 인력이 국내 R&D센터에는 극히 드물다는 뜻이다.

산업연구원 장윤종 박사는 “외국계 기업의 R&D센터 근무자들이 우수한 인력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며 “이처럼 영세한 규모로 R&D센터를 운영하는 건 국내 연구인력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계 기업의 69.5%가 ‘기술개발 인력 부족’을 ‘한국에서 R&D센터를 운영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복수응답 가능)으로 꼽았다.

장 박사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외국계 R&D센터를 구걸하다시피 해서 유치하는 것보다 국내 기술인력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한국이 원하는 기능의 외국계 기업 R&D센터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