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 대전 대덕초등학교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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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대전 유성구 대덕초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김동위 군의 아버지인 김희령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실험을 통해 기체의 팽창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 학교는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는 과학자 학부모가 많은 점을 활용해 2004년부터 ‘과학자 학부모 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지명훈 기자
지난달 7일 대전 유성구 대덕초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김동위 군의 아버지인 김희령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실험을 통해 기체의 팽창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 학교는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는 과학자 학부모가 많은 점을 활용해 2004년부터 ‘과학자 학부모 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지명훈 기자
《지난달 7일 대전 유성구 대덕초등학교 2학년 2반. ‘작용과 반작용’ 강의에 나선 LG화학연구원 정상국(38·분석화학 전공) 선임연구원이 방송 프로그램의 실험맨을 흉내 내 제균실에 들어가는 복장으로 수업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됐음을 확인한 그는 페트병에 식초와 소다를 넣고 마개를 닫은 뒤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게 페트병을 흔들었다. 마개가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로켓처럼 날아가 버렸다. “물체 A가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B 역시 A에 똑같은 힘을 가하고….” 아이들은 정 연구원의 설명에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뚜껑을 주우려고 몸싸움이 한창이다. 상관없다. 그는 아이들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체득했음을 느꼈다.》

4학년 4반. ‘마음과 뇌’ 강의에 나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대수(38·생명과학과) 교수가 정상적인 쥐 C와 뇌에서 두려움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쥐 D가 낯선 물체에 반응하는 실험 동영상을 보여 줬다.

김 교수는 C가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반면 쥐 D는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에 대해 “마음과 뇌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아이들 입에서 “아하!” 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 연구원과 김 교수는 해당 학급 학생의 아버지. 이들을 포함해 19명의 과학자 학부모가 이날 ‘명예 교사’ 임명장을 받고 1∼6학년 전 학급에서 과학 수업을 진행했다.

2학년 1반 담임 송인순 교사는 “최고 전문가의 쉽고도 명확한 개념 설명과 실험 실습을 어디에서 접하겠느냐”며 “이런 수업이 부러워 우리 학교로 전학시키고 싶어 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2004년 과학자 학부모 수업을 도입했다. 학부모의 70%가량이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소나 대학에 근무하는 과학자라는 점을 활용한 것.

이 학교는 과학자 수업을 학급별로 연간 4회가량 권장하고 있지만 과학자 학부모가 많은 일부 학급은 10회 이상을 한다.

학생들은 이와는 별도로 1998년부터 부모의 일터인 연구소나 대학을 찾아 과학의 원리와 연구 방법을 공부한 뒤 매년 ‘꼬마 과학자’라는 140쪽짜리 소책자를 펴내고 있다. 25일에는 3학년 및 5학년 학생들이 기계연구원을 찾았다.

상당수가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40% 이상 해외생활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2005년부터 외국어 명예교사를 자원해 귀국아반과 희망자를 대상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일어 등을 가르친다. 이 학교는 해외생활을 오래한 학생이나 외국인 연구원 및 교수의 자녀를 대상으로 귀국아반 3개 반(73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영어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앤 씨의 아들 홍성빈(2학년) 군은 “엄마가 선생님으로 오시니 자랑스럽다”며 “학교에서 엄마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도록 수업을 매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들은 올해부터는 도서관 사서로 나서거나 독서교육 강사를 자원했다. 독서 강사인 장현숙 씨는 “지난달 수업을 배정받아 ‘우렁 각시’를 읽어준 뒤 아이들과 책 내용 및 전래동화에 대해 토론했다”며 “동심의 세계를 이해하고 내 아이와 친구들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명예교사제 활용 등으로 이 학교는 매년 대전시교육청이 여는 ‘과학싹 잔치’와 ‘영어 한마당대회’에서 각종 메달을 휩쓸고 있다.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설문조사 결과 학생의 50% 이상이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를 꼽았다.

장형 교장은 “학부모 품앗이 교육으로 사교육비 걱정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학교가 함께 만들어 가는 행복한 배움터로 변했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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