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염상섭 ‘삼대’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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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역사가들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현명했든 현명하지 못했든 간에 조선은 나름의 노력으로 역사의 고난과 변화에 대처해 나갔습니다. 적어도 ‘붕당’의 시대까지는 말이지요. ‘붕당’이라는 건 오늘날 정파가 나뉘어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각과 주장을 가진 당파가 대립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붕당의 시대를 종식시킨 건 바로 외척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정책을 가진 집단이 대립하고 견제하는 붕당 대신에 왕비를 만들어 낸 특정 가문이 국가의 모든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상태가 온 것이지요. 이를 ‘세도정치’라고 부릅니다. 이때부터 조선은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권력은 착취의 도구가 되고, 더 큰 권력을 갖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동아시아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시대에 조선은 그렇게 외척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 독일 상인, 미국 관리, 프랑스 선교사 등으로 이뤄진 다국적 도굴단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파헤칩니다. 이 일로 서양인은 인권을 유린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조선인들 머리 깊숙이 박혀 버렸습니다. 조선인들에게는 서양을 멀리하는 일이 사악한 것을 배척하는 것과 동격이 되었지요.

이런 사건들 때문에 조선은 외세와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혐오스럽게 여기거나 아예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최후진국으로 남게 되지요.

후대 사람들은 이때의 조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조선 정부가 프랑스 선교사들을 죽인 때로부터 약 60년 후, 지식인들의 발가벗겨진 ‘자기 자신 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지식인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인력거를 끌며 일하는 사람을 묘사하며 그것이 조선의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식인은 “고을마다 순사가 있어 평화로운 일제 시대야말로 진정한 태평천하”라고 말하는 기회주의자를 비판합니다.

여기 ‘염상섭’이라는 이름의 지식인이 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부자와 가난한 자, 전통과 근대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갈등하는 한 젊은이의 고민을 통해 조선의 모습을 그려 나갔습니다.

그의 소설 ‘삼대’에는 덕기가 등장합니다. 덕기는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입니다. 덕기의 할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도 전통을 수호하지만 민족의식은 없습니다. 덕기 할아버지의 유일한 목적은 부의 축적과 대물림입니다. 덕기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신문화(新文化)의 상징인 기독교에 헌신하지만 부패하고 나약한 인물로 변모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아들로 인정받지도 못합니다.

덕기의 친구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역시 기독교도인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소득이 없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도 덕기 가문의 부를 비꼽니다. 그러나 덕기에게 꼬박꼬박 술을 얻어먹습니다. 덕기는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그 어떤 것에서도 선명한 삶의 진리나 희망을 찾지 못합니다.

덕기의 할아버지는 며느리보다도 더 어린 첩을 데리고 삽니다. 덕기의 아버지는 덕기의 어릴 적 친구를 둘째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충실한 아내가 있는 덕기는 한 어린 소녀에게 반합니다.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 그러했듯이 그녀는 아주 처량하고,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덕기는 이 소녀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하지만 덕기의 머릿속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여러분, 삼대의 삶 속에 숨겨진 조선의 진실을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이수봉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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