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하이킥]경기도 논술평가 인문계 1등 광주중앙고 2학년 송이슬 양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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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으로 통하는 경기 광주중앙고 송이슬 양은 평소 친구들과 자유롭게 떠들고 대화하는 것도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송 양이 22일 교정에서 친구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최세미 기자
‘논술의 왕’으로 통하는 경기 광주중앙고 송이슬 양은 평소 친구들과 자유롭게 떠들고 대화하는 것도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송 양이 22일 교정에서 친구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최세미 기자
《경기 광주시 광주중앙고 2학년 송이슬(17) 양. 송 양은 4월 경기도내 모든 고교생이 치른 논술능력평가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송 양의 답안에 대한 심사위원단의 평가는 이랬다.

‘적절한 예시와 유려한 글 전개가 다른 학생의 수준을 압도한다.’

논술학원이라곤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송 양은 어떻게 ‘논술의 왕’이 됐을까?》

○제대로 읽어라

논술에서 송 양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문제분석’이다. ‘요약-비판-내 주장하기’로 ‘세트’형 문제가 나오는 게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의 추세. 결국 동일한 제시문을 두고 두세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제시문의 내용이 뭔지’ ‘문제가 요구하는 것이 뭔지’만 정확히 이해해도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다.

이번 논술시험도 마찬가지. 송 양은 제한시간 100분 가운데 40분을 문제분석에 투자했다. 인간의 삶을 환경결정론, 운명결정론, 생물학적 결정론의 시각에서 각각 바라보는 제시문 (가)∼(다)와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는 제시문 (라)를 서로 비교하는 문제였다.

송 양은 먼저 제시문을 찬찬히 읽고 밑줄을 그었다. 이후 각 제시문 옆 빈칸에 주제를 한두 줄로 요약해 메모했다. ‘주제를 요약하라(100자)’는 1번 문제는 제시문을 읽는 과정에서 이미 해결된 셈이다.

○사례를 메모하라

학생들이 논술에서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제시문 속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송 양은 일단 각 제시문 옆에 제시문의 주제와 관련된 짧은 사례를 메모한다. 책이나 신문에서 읽은 내용으로부터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까지 생각나는 대로 쓴다. 그 중 논제가 요구하는 바나 글 전체의 흐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두 개를 선택해 예시로 사용한다. 제시문의 문장을 베껴 쓸 염려가 없는 데다가 창의성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번 논술평가에서 송 양은 △충남 아산만 방조제 공사 때 폐유조선을 사용해 바다 물살을 가로막았던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 및 사막의 부유국으로 발돋움한 두바이(환경결정론 비판) △장애인이 낸 자서전 ‘오체불만족’과 장애인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운명결정론 비판) △교과서에서 본 ‘충(忠)’과 ‘서(恕)’의 정신(생물학적 결정론 비판)을 각각 사례로 들었다.

○논술공부, 따로 없다

주로 책과 신문에서 글감을 얻는 송 양. 학교 독서교육과 고교 1학년 때부터 들어온 방과 후 논술특강이 큰 도움이 됐다. 광주중앙고는 독서교육이 철저한 학교로 소문났다. 전교생이 한 학기에 책 3권을 의무적으로 읽고 독후감을 쓴다. 송 양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 성적순으로 여학생, 남학생 각 100명만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에선 별도로 격주 1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 검사를 받는다.

이 밖에 주 1회 1시간 반씩 외부강사가 진행하는 논술특강에선 ‘뉴스 일기’를 검사한다. 노트의 한 면에는 일주일 동안 가장 이슈가 된 사건의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또 다른 한 면에는 기사를 요약(300∼400자)한 뒤 ‘나의 주장-주장의 이유-대책’을 3단계로 써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대화하라

책과 신문에서 아무리 좋은 사례를 얻었더라도 이를 제시문과 연결하는 논리력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시사 이슈나 배경 지식에 관한 자료를 읽은 뒤 선생님과 20∼30명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문답을 주고받는 논술특강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이런 논리력과 순발력, 그리고 창의적인 적용능력을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하다고 보니?”(교사)

“저는 FTA를 안 했으면 좋겠어요.”(학생)

“왜?”(교사)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농업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농민들한테 피해가 크니까요.”(학생)

“농업은 그렇지. 그럼 농업 말고 다른 분야는 어떨까? 우리 소비자들의 입장에선?”(교사)

○생활이 논술이다

논술수업뿐 아니라 모든 대화는 논술의 ‘잠재적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게 송 양의 생각. 친구들이나 기숙사 선배들, 학교 선생님과 주고받은 대화 중 되새길 만한 대목은 따로 메모해 놓거나 기억한다.

이번 논술능력평가에서 송 양이 ‘두바이’라는 멋진 사례를 들 수 있었던 것도, 기숙사에서 3학년 선배 언니와 잡담을 주고받다가 우연히 ‘얻어들은’ 내용을 따로 공부해둔 덕분이다. 당시 송 양은 사막을 배경으로 한 개그 한 토막을 선배에게 들려주며 웃고 있었는데, 선배가 불현듯 “호호호. 사막을 완전히 바꿨다니, 완전 ‘두바이’잖아?” 하고 말했던 것. 송 양은 두바이에 관한 자료를 샅샅이 찾아보았고 관련 내용을 메모해 두었다.

“그냥 조잘거리고 노는 것 같아도 사실 모든 대화는 ‘정보의 교환’이 아닐까요?”(송 양)

궁금한 게 생기면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3학년 선배들이나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까지 거침없이 물어본다는 송 양은 810명인 전교생이 모두 가족 같다고 말할 만큼 소문난 ‘마당발’이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해 장차 문학 선생님이 되는 게 꿈. 송 양은 “FTA 같은 건 사회과목을 잘 하는 친구한테 물어보지만 시나 소설이 나오면 제가 친구들을 가르쳐 줘요”라며 웃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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