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책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삼국시대 제사 유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굴 팀에 따르면 정치·종교의 중심지인 제사 유적지를 목책들로 층층이 보호한 것은 강력한 중앙권력의 존재를 증명한다. 기장군이 신라 지증왕대인 505년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으로 불리기 이전의 역사는 그동안 밝혀진 적이 없었다.
23일 발굴을 마무리한 경남문화재연구원은 28일 대라리 유적에서 열리는 설명회에서 이 같은 발굴 조사 결과를 학계에 보고한다.
이번에 대라리 양달산 구릉(해발 137m)에서 발견된 제사 유적은 타원 모양의 목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가장 바깥쪽 목책은 긴지름이 70m, 짧은지름이 60m에 달한다. 구릉 전체를 감싸는 목책을 6겹이나 세운 것은 이 제사 유적이 아무나 접근하기 힘든 신성한 곳이었음을 보여 준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이 유적의 연대는 5세기 중반∼6세기 전반으로, 신라가 낙동강 하류의 기장 동래 김해로 세력을 넓히며 가야 정복에 공을 들이던 때라고 발굴 팀은 설명했다. 발굴 팀에 따르면 “기장은 동래와 김해를 넘보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지”다. 대라리 유적은 4개 봉우리에 펼쳐져 있을 뿐 아니라 제사 유적 위에서 기장읍 전체와 동해를 조망할 수 있어 기장에 기반을 둔 고대국가의 핵심지였을 것으로 발굴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이 연구원의 정의도 학예연구실장은 “신라에 편입되기 전까지 신라의 불교와 대비되는 토착신앙의 제사장이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고대국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성과”라며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해 현장 보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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