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보여 준 前官의 타락

  • 입력 2007년 5월 2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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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 폭행 사건 수사 라인에 있던 경찰 간부들이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불법 로비에 휘말려 줄줄이 징계를 당하고,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다. 한화그룹 고문을 맡고 있는 최 전 청장은 홍영기 서울경찰청장과 전화통화를 하고 식사를 하며 사건 처리를 논의한 사실이 밝혀졌다. 최 씨는 서울경찰청 김학배 수사부장, 한기민 형사과장,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 씨는 현 정부 들어 시행된 2년 임기제의 첫 경찰청장이었다. 평생 경찰에 몸담고 최고의 영예인 총수 자리까지 올랐으면 퇴임 후 직장을 고르더라도 경찰 조직과 후배들의 명예를 고려했어야 옳다. 불과 2년 전에 퇴직한 경찰 총수 출신이 재벌그룹의 고문으로 취직한 것부터 관련 업무 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 윤리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김 회장 사건이 터지자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고 식사를 함께 하며 사건 무마를 시도한 것은 타락한 저질 로비스트와 다를 바 없다.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의 “한화가 평생 먹여살려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주장은 한화 측이 곳곳에 금품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보여 준다.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경찰 간부 중에는 최 씨가 경찰청장 직에 있을 때 직접 데리고 일한 사람도 있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가 난처했을 것이다. 인간적인 약점을 이용해 후배들을 범죄적 로비에 끌어들여 앞길을 망쳐 놓은 최 씨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합법적이긴 하지만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인사들이 법률회사에 취직하는 모습도 아름답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최고재판관으로 73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전관(前官) 윤리를 보여 준 사례는 적지 않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면서 변호사 개업 대신에 모교인 동아대 교수를 택했다.

퇴임 후에도 전직과 전관예우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지 않고 ‘국가조직의 명예’를 지키며 사회에 봉사하는 전관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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