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규한]호기심 죽이는 과학교육

  • 입력 2007년 5월 2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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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미국의 빌 게이츠는 과학기술로 8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시절 구글을 세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인터넷 정보과학 기술로 1만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 일자리 창출의 원천임을 보여 준다.

한국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대학에서 중고교까지 점차 확산되는 중이다. 과학기술 싱크 탱크랄 수 있는 해외 유학 과학도는 귀국을 기피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우수과학 인재에게 국가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거꾸로 가는 과학교육이다.

몇 년 전 교내 자연사박물관장으로 일할 때 과학 수업의 일환으로 견학 온 학생들에게서 흥미로운 행동을 발견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학생은 호기심과 궁금증에 가득 차 많은 질문을 던졌다. 중고교 학생들은 대조적이었다. 전시장을 휙 지나치거나 전시장 밖에서 서성일 뿐이었다. 과학에 호기심을 갖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상급 학교로 갈수록 과학에 대해 관심도가 낮아지는 원인이 궁금했다.

국내 중고교의 과학 교육과정 및 교과 운영은 과학기술 수준에 못 미친다. 또 교육 현장의 교수법이 부적절하다. 중고교의 기술 가정 교과 내용은 밥 짓기, 국화 가꾸기, 전기다리미 점검, 손님 초대행사 상차리기, 자동차 관리 등을 다룬다. 미래 우주탐사 개발이나 나노-바이오에 대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버려진 컴퓨터나 휴대전화기, 냉장고의 구조를 이해하고 분해하는 등 실용성 있는 교육이 유용하지 않을까. 실업기술계 학교까지도 실험실습이 아니라 진학 중심으로 과학을 가르친다.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본 시마즈제작소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씨는 실수로 잘못 조제된 재료로 실험하는 과정에서 생체고분자 구조 해석법이라는 뜻밖의 성과를 얻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서 자주 들었던 “아직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라는 말씀 때문에 잘못 조제된 실험재료를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실험에 사용했다고 토로했다. 나아가 자신의 실험연구 성과는 할머니가 심어 준 일본의 전통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도 문제다. 미국에서는 과학잡지 우수논문 발표자를 선정하면 대통령 이름으로 축하편지를 보낸다. 해마다 국내에서 열리는 과학기술 훈포장 시상식에서는 다른 인사가 대통령 표창을 대신 전달한다. 과학기술자를 중시하고 존경하는 풍토 조성이 아쉬운 상징적인 대목이다.

가정에서는 어떤가. 과학올림피아드 같은 국제적인 과학경시대회에서 한국 학생은 우수한 성적을 얻지만 컴퓨터 하드웨어를 조작하거나 트랜지스터를 분해 조작하면 공부나 하라면서 질책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학교에서는 실험기구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교사가 학생에게 자주 말한다.

마음껏 뜯어 고치고 만들게 하며 놀게 하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호기심이 날 때 손으로 만져 보고 조작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생겨나고 두뇌를 자극해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고 스스로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과학기술의 성과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실험교육에서 얻는다. 입시 위주의 암기식 과학교육과 쉽게 답을 구하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 과학적 내용은 실험을 통해 이해하지 않으면 창의적인 새로운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 문제가 있어야 답이 있기 마련이다. 큰 문제에서 큰 답이 나오고, 좋은 문제에서 좋은 답이 나올 수 있다.

김규한 이화여대 교수 과학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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