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정권홍보처’가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 입력 2007년 5월 27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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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책방송(KTV)은 ‘정권홍보처’로 전락한 국정홍보처 산하 영상홍보원이 운영하는 케이블방송이다. 이 방송의 지난달 시청률은 0.05%였다. 이는 4800만 전체 국민 가운데 2만4000명 정도가 이 방송을 봤다는 뜻이다.

이 방송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영화관에서 대통령 동정이나 소개하던 ‘대한뉴스’에 뿌리가 닿아 있다. 그런 KTV를 노무현 대통령은 “내용이 알차다”고 칭찬하며 공무원들에게 시청을 권장했다. 그럴 리야 없지만 KTV 시청자가 모두 공무원이라 해도 2만4000명은 전체 공무원 93만여 명의 2.6%에 불과할 뿐이다. 대통령 말에 공무원들도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닐까.

지난달 KTV 시청률은 0.01% 이상 시청률이 나온 87개 케이블 채널 가운데 52위에 그쳤다. 민간방송이라면 문을 안 닫고 정상적인 경영이 되겠는가. 그러나 정권 홍보를 열심히 해서 대통령이 좋아하고, 올해 국민 세금 201억 원이 들어갔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야당이 국정홍보처 폐지를 주장하지만 다음 정권에서 KTV 운명이 어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청와대브리핑, 국정브리핑, 국정홍보용 격주간지 코리아플러스, 국방홍보원, 아리랑 TV까지 포함하면 올해 주요 정권홍보 매체에 들어가는 세금은 860억 원이나 된다. 홍보에 정권의 명운을 건 듯하다.

국민 세금을 쓰는 방송의 효율성도 문제다. 시청률 0.05% 방송에 효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도 KTV는 총리, 장차관 등 전·현직 고위 관료와 ‘노무현 사람들’이 단골 손님이다. 일부 부처는 홍보 실적 평가 때문에 “KTV에 우리 장관 출연시켜 달라”고 홍보처에 매달린다는 후문이다.

이 정권은 고위 공직자들의 KTV 출연은 권장하면서도 이들이 영향력 있는 큰 신문과 인터뷰하거나 신문에 기고하는 것은 금지했다. 국민과 소통하고 정책을 이해시킬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노 대통령도 유력지와의 단독 인터뷰는 안 하고, 대선 때 도와준 매체들과 ‘사례용’ 인터뷰나 해 왔다. 영향력 있는 신문과의 인터뷰나 신문 기고는 국민 세금도 안 들고, 정책 전파력과 홍보효과도 클 텐데 혈세 쓰는 홍보만 고집하니 희한한 정권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계 전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자실 통폐합과 공직자 취재 제한 조치를 밀어붙였다. 그런 대통령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언론 모델’이 혹시 정권 홍보에 힘쓰는 KTV라면 큰 문제다. 국민은 이런 매체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만 내고, 요긴한 정보는 거의 듣도 보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기자실 통폐합이 “언론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책과 문제 중심의 보도를 주문했다. 출입처 제도나 신문 방송 제작은 언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청와대가 주문할 일이 아니다.

기자실 폐지와 부처 사무실 출입 제한을 청와대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등 많은 나라가 주요 부처에 기자실이나 브리핑룸을 두고 있다. 사무실 출입은 문화와도 관계가 있다. 그런 걸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건 억지다.

그래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좋아한다니 묻겠다. KTV 같은 정권홍보 방송을 세금으로 운영하고 정부에 ‘정권홍보처’ 두는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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