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경제읽기]다시 날개 편 러시아 항공산업

  • 입력 2007년 5월 26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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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동북쪽으로 40km 떨어진 도시인 ‘즈뵤즈드니 고로도크’ 주변 도로에는 요즘 말끔하게 차려입은 회사원과 화물차가 유난히 많이 늘었다.

이 도시 인근에는 항공기 디자인센터와 각종 실험센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신형 항공기 시제품도 여기에서 나온다. 실험센터에 항공기 소재를 납품하는 이반 세르게예비치 씨는 “2000년 초반까지 실업자가 넘쳤던 이 도시가 활기를 되찾은 것은 러시아 항공 산업이 부활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항공 산업은 10년 이상 침체의 늪에 빠졌다. 당시 항공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던 주문자는 국가였지만 항공기 제작 회사가 자금 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다. 국가가 재정적자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항공기 제작 엔지니어와 근로자는 장기간 일자리를 잃었다.

거의 다 쓰러져 가던 러시아 항공 산업을 구원한 것은 글로벌 아웃소싱(국제 외주 계약)이었다.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는 러시아의 값싸고 능력이 우수한 항공 인력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보잉은 항공기 날개와 동체 디자인 부문에 러시아 엔지니어를 대규모로 고용했다.

여기에 러시아 경제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연간 6% 이상 성장하면서 군수용 및 민간 항공 산업에 날개를 달아 줬다. 러시아 최대 항공지주 회사인 통합항공사(UAC) 회장을 겸하고 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는 올해 “이젠 항공기 제작 회사가 국가가 주문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러시아 국영은행인 대외무역은행은 10억 달러를 들여 에어버스의 모기업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지분 5%를 사들였다. 전략 투자를 토대로 UAC와 EADS가 러시아에 민항기 제작회사를 세우게 한다는 것이 러시아의 계획이다. 러시아가 티타늄 등 항공기 소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데다 우주선 발사로 습득한 양질의 전문 인력이 많아 ‘메이드 인 러시아’ 항공기를 팔아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항공 산업 활황으로 콧대가 높아진 러시아는 유럽에 큰소리까지 치고 있다. 아르카디 드로르코비치 대통령직속 수출통제담당 국장은 21일 “EADS가 협조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지분 5%를 팔아 치우고 보잉이나 캐나다 항공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겠다”고 말했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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