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독재정부, 유가 오를수록 언론탄압 심해져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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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최근 정부에 비판적인 민영 방송국을 없애고 공영 방송을 설립하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는 회원이 10만 명인 기자 조합에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다. 이란 정부는 비판적인 일간지를 잇달아 폐간시키고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한다.

이 같은 행태의 동기는 무엇일까.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 씨는 지난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칼럼 ‘석유정치(Petropolitics) 제1법칙’에서 “산유국에서 석유 가격과 자유도는 반비례한다”고 지적했다.

2002년 배럴당 약 30달러였던 유가는 2006년 55달러 이상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에 산유국들의 언론 자유도는 이와 반비례해 떨어졌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 자유도 순위에서 베네수엘라는 77위에서 115위, 러시아는 121위에서 147위, 이란은 122위에서 162위로 뒷걸음질쳤다.

미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24일 ‘산유국의 독재 정부가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국민의 환심을 산 뒤 이를 지렛대 삼아 언론 검열의 수위를 높인다’며 이들 나라의 도를 넘은 언론 통제 실태를 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가장 오래된 민영 방송사 라디오 카라카스 TV(RCTV)의 면허 갱신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RCTV는 아침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차베스 대통령을 “독재자가 되기 전 내쫓아야 할 사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2년 차베스를 일시적으로 몰아낸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도 쿠데타를 지지해 차베스의 분노를 샀다.

RCTV가 방송 면허 유효 기간이 끝나 28일부터 방송을 못 하게 되자 수만 명의 베네수엘라 시민은 19일과 21일 정부 방침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번 주말에도 항의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러시아 정부는 회원 수가 10만 명인 기자 조합의 사무실을 빼앗아 국영 영어 케이블 뉴스채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난주 러시아 볼가 강변 휴양지 사마라에서 러시아의 인권 상황 등을 의제로 유럽연합(EU)과 러시아 간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는 경찰이 시위 중이던 반정부 단체 ‘또 다른 러시아’의 단원들과 이들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체포해 물의를 빚었다.

경찰은 야당 성향의 일간지인 ‘노바야 가제타’의 사마라 지국을 급습해 컴퓨터를 압수하고 신문 발행을 막기도 했다.

모스크바 소재 시민단체 ‘극한 상황에 놓인 저널리즘 센터’의 분석가 미하일 멜니코프 씨는 “비판의 영역이 날로 줄어 독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란은 2005년 강경 이슬람교 원리주의 정부가 들어선 뒤 수백 개의 신문을 폐간시켰다. 지난해에는 핵 개발에 나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풍자한 만평을 실은 일간지 ‘샤르그’를 비롯해 4개 신문이 폐간됐다.

포린폴리시의 모이제스 나임 편집인 겸 발행인은 “언론 검열은 산유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언론 통제는 국가가 직접 검열을 시행하는 형태에서 세무조사나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화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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