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노 세계 열어 준 원자 현미경
원자현미경은 말 그대로 원자 차원으로 볼 수 있는 현미경이다. 물론 렌즈로 확대해 보는 일반 현미경과는 다르다. 원자현미경에는 렌즈 대신 뾰족한 탐침이 달려 있다. 끝이 원자 2, 3개로 이뤄진 뾰족한 이 탐침은 일종의 더듬이 구실을 한다.
탐침은 관찰하는 대상의 표면을 따라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표면에 있는 원자들의 배열 구조를 읽어낸다. 표면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원자 간에 밀고 끄는 힘의 변화를 읽어 표면 모양을 알아내기도 한다. 종류에 따라 원자 하나에 해당하는 0.1nm까지 구별해 낸다. 이 정도면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골프공을 찾아내는 수준이다.
나노 과학자들의 목표는 이를 이용해 지금의 D램보다 훨씬 집적도가 높은 저장매체를 만드는 데 있다. 물론 살아 있는 세포를 연구하는 데에도 쓰인다.
○ 정보, 바이오산업 이끄는 첨병
현재 원자현미경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는 곳은 Tb(테라비트·1Tb는 1조 b)급 고용량 하드디스크 개발 분야. 저장 용량을 높이기 위해 디스크 표면과 헤드(정보를 읽는 장치) 간격을 몇 nm 수준으로 줄이려면 이를 측정할 고성능 장비가 필요하다. Tb급 하드디스크의 표면과 헤드 간격은 0.5nm 안팎으로, 분자 서너 개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문제는 틈이 이보다 좁으면 헤드에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져 ‘고장률’이 높아지고, 반대로 넓으면 ‘정보의 에러율’이 올라간다는 것. 가장 이상적인 0.5nm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원자현미경은 필수품인 셈이다.
원자현미경은 바이오 분야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몸속 곳곳을 누비며 암세포 등 질병을 치료하는 나노 로봇 개발자들도 원자현미경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7개국은 세포에 침투해 이상 부위를 없애는 ‘미크론’이라는 초소형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포에 난 작은 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작은 로봇에 팔다리를 붙이려면 원자현미경 수준의 확대경이 필요하다.
올해 4월에는 영국 맨체스터대 이리너 바벌리너 교수팀이 원자현미경의 뾰족한 탐침을 전극으로 활용해 세포가 죽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 올해 원자현미경 국산화 10년 맞아
다른 업체에 공급한 것까지 포함하면 세계 4대 하드디스크 제조회사에 납품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이들 회사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면 앞으로 공급될 고용량 하드디스크 중 3분의 2는 국산 원자현미경의 검사를 받게 된다.
박상일 대표가 불모지와 다름없는 국내에서 원자현미경 개발에 뛰어든 것은 1997년. 이 회사가 2002년 개발한 XE-100은 탐침이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방식으로, 기존 원자현미경처럼 상이 일그러지지 않고 측정 시간도 2, 3분으로 줄었다. 시장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원자현미경 시장은 약 2000억 원 규모. 고용량 하드디스크, 반도체 메모리 등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