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이란 자존심 컷!…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화제

  • 입력 2007년 5월 24일 22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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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의 절묘한 정치적 균형감이 23일(현지시간) 다시 확인됐다. 19일 미국 의료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코(Sicko)'를 통해 세계 최강국의 치부를 폭로한 칸 영화제는 23일 이번엔 미국의 앙숙인 이란의 자존심을 벌겋게 부풀어 오르게 할 영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란출신 여성감독 마쟌느 사트라피(38)와 프랑스의 뱅상 파로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페르세폴리스'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옛 지명을 제목으로 단 이 영화는 2000년 사트라피가 발표한 동명의 자전적 그래픽노블 연작을 흑백 카툰 형식으로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 영화는 1978년 이란혁명의 주역들을 배출했지만 혁명의 변절로 구성원들이 희생당한 사트라피 가문의 20여년에 걸친 비극적 가족사를 위트 있는 화면과 익살스런 대사로 그려냈다.

8살 소녀 마쟌느에 의해 포착된 이란혁명에 대한 흥분은 8년여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신정(神政)국가에 대한 환멸로 변해간다. 수업시간에 샤(이란 왕)의 통치시절 왕정을 미화하던 교사들은 공화국체제가 들어서자 실제론 과거보다 100배나 늘어난 정치범의 숫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 강변한다. 세부적 인체를 그려야할 미술수업에 누드모델 대신 몸 전체를 감싼 검정 망토를 두른 모델이 등장하고, 수업에 늦어 뛰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선정적이란 이유로 경찰의 단속을 받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또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란·이라크전쟁은 결국 서구 무기장사꾼들의 잇속에 놀아난 '무의미한 전쟁'으로 묘사된다.

이란 정부는 "이슬람혁명의 의의를 왜곡한 영화"라며 프랑스정부에 항의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영화의 선정에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하지 않았다"며 이를 일축했다.

영화 속 마쟌느와 그 어머니의 목소리연기는 실제 모녀관계인 키아라 마스트로야니와 카트린느 드뇌브가 맡았다. 드뇌브는 기자회견에서 "매우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놀라운 유머감각과 우아한 자기성찰로 보편적 휴머니즘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처녀작이 황금종려상 후보로 초청받았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마쟌느 감독도 "정치와 상관없는 가족사를 그린 영화이며 세계 어느 곳의 사람이나 공감할 보편적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트라피 감독이 영화 속 마쟌느처럼 오른쪽 콧잔등에 큰 매력점을 갖고 있지만 그처럼 날씬하진 않듯이 이런 수사가 곧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마쟌느는 프랑스로 건너 온 뒤 지독한 향수병에도 불구하고 끝내 모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억압할 뿐 아니라 자기모순에 휩싸인 이란의 상황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지를 떠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법이다.

칸=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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