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으로 전락한 러시아 해외주둔군

  • 입력 2007년 5월 24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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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이후 국외에 주둔 중인 러시아 군이 공동 방위 기능을 잃고 주변국과 갈등을 겪으면서 현지 정부와 주민의 냉대를 받는 불청객으로 변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주둔한 나라는 벨로루시와 타지크스탄을 비롯한 9개국. 이들 국가에 설치된 러시아 군사 기지는 25곳에 이르지만 순수 군사 작전용 기지는 크게 줄었다.

러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23일 "러시아 해외 주둔군이 파병 목적을 잃은 채 반(半) 용병의 지위로 떨어지는 곳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등 돌린 대가로 철군 압력=그루지야 서쪽 바투미에 주둔 중인 러시아 기계화 부대는 1995년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집단안보조약에 따라 2020년까지 기지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루지야는 2001년 기지 사용 기간을 줄이자며 러시아에 철군을 요구했다. 러시아 정부가 2003년 친 서방 '장미혁명'이 일어난 그루지야에 등을 돌리면서 이 부대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이 부대는 내년 10월 1일까지 모두 떠나고 기지는 그루지야에 넘겨줄 계획이다.

러시아는 특히 그루지야 안의 민족 분리주의자 편을 들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러시아 군은 그루지야 내 친러 소수민족 지역인 압하지야와 남(南)오세티야의 분쟁에 개입했다가 지금까지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러시아 주둔군에 대한 냉대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몰도바에서도 일어났다. 이들 국가는 최근 러시아와 군사 동맹 관계를 끊었다. 이 지역에선 정권 교체가 러시아 군의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

소련 시절 미사일 조기경보를 위해 설치된 아제르바이잔 가발라 레이더기지는 정보 분석 센터로 바뀌었다. 기지가 더 이상 군용으로 사용될 수 없게 되자 러시아 측은 지난주 이 기지를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이용하자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몰도바에 주둔하는 러시아 군은 정부간 갈등에 따라 명맥만 남았다. 몰도바 정부는 러시아 군이 드네스트르 강 동쪽의 트란스드네스트르 지역 분쟁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완전 철군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러시아 군은 이 지역 안의 친(親)러시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버티고 있으나 인력과 장비는 대폭 줄였다.

▽친해도 공짜는 없다=러시아 군은 대부분 동맹 국가에서 기지 사용료를 물지만 집단방위조약을 맺을 당시의 끈끈한 관계는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

소련 시절 첨단무기 실험 장소였던 카자흐스탄 다목적 기지 사용료는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에 진 빚을 갚는데 쓰였다. 이 기지 가동률은 1990년대의 5~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주선 발사기지로 유명한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기지는 러시아가 매년 1억1500만 달러의 사용료를 물면서도 운용 주체를 우주군에서 민간 기관으로 바꿨다.

타지크스탄의 러시아 군도 기지 사용 대가로 2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고 현지 민간인을 기지에 고용하기로 약속했다.

코메르산트는 "러시아 주둔군이 당초의 목적과 기능을 상실하면서 처치 곤란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기자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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