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피해자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 입력 2007년 5월 24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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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협박과 폭행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경찰에 신변 보호를 직접 요청하지 않았어도 피해 사실과 함께 "가해자를 수사해 구속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냈다면 묵시적인 신변보호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주기동)는 "경찰이 신변보호 요청을 묵살해 딸이 살해됐다"며 조모 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3억1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조 씨 측에 6900여만 원을 주라"며 조 씨 측에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조 씨의 딸 A 씨(사망 당시 28세)는 2002년부터 B 씨와 사귀어오다 B 씨가 이혼한 적이 있고 전처와의 사이에 2명의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고 B 씨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이 때부터 B 씨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A 씨를 여러 차례 협박 감금 폭행했고 "결혼해주지 않으면 가족까지 죽이겠다"며 공기총으로 살해 위협도 했다. B 씨는 2004년 4월 A 씨 몰래 혼인신고도 했다.

참다 못한 A 씨는 2004년 9월 "B 씨를 수사해 구속해 달라"며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그러나 남녀 간의 단순한 애정문제로 여겨 B 씨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A 씨는 고소장을 낸지 열흘 뒤 B 씨에 의해 살해됐고 A 씨 부모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 씨가 명시적으로 신변보호 요청을 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은 고소장을 내면서 B 씨를 구속해 달라고 한 것은 묵시적으로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경찰은 A 씨의 신변을 보호하고 B 씨의 소재를 파악하는 등의 직무상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밝혔다.

이종석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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