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창용]큰 정부, 작은 정부, 이구아수 감사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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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외환위기가 발발하자 4대 구조조정이 강조됐다. 금융 기업 노동 공공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말한다. 언제부턴지 유독 공공 부문 구조조정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는 작은 정부보다 일하는 정부가 중요하다는 기치 아래 중앙 공무원 수만 6만여 명이 늘었고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백지화됐다. 정부지출, 특히 복지지출을 비교할 때 정부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작으니 일을 제대로 하려면 공공부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외유 출장 사건을 보노라면 이런 정책 방향 선회가 옳았는지 의심하게 된다. 민영화가 됐다면 일어날 수 없을 일이다.

일 잘하는 정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하기 위해 반드시 공무원 수가 늘어나야 하고 공기업이 많을 필요는 없다. 유능한 정부라면 덩치를 키우지 않아도 민간과의 협조를 통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예로 들어 보자. 선진국과 한국 사례를 비교하면 정책 집행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공무원 늘리지 말고 민간 활용을

우리나라 방식은 정책 목표 수립부터 지원 대상의 선정, 사후 감독 및 부실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공공기관이 담당한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가 정책 목표를 세우면 공적 신용보증기구가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대출보증과 사후 관리 감독까지 담당한다.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정책 목표를 세우고 지원 대상 기업의 자격을 설정하되 사업집행은 대부분 민간 금융기관에 위탁한다. 민간 금융기관이 정책 목표에 맞는 기업을 선별하고 이들에 대한 대출 위험을 정부와 민간이 나눠 부담하는 간접적, 다단계 방식을 추구한다.

민간을 이용한 방식은 여러 장점을 가진다. 우선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로 정부 재원을 절약해 작은 정부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정책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금융지원을 정부가 주도하면 유사시에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도산 위험이 커질 때도 ‘어려울 때 정부가 우산을 뺏는다’는 정치적 비난 때문에 자금 회수가 어려워져 정부는 한계기업의 포로가 된다.

다단계 방식을 채택하면 기업이 정부지원 여부를 알 수 없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 정부가 직접 대상 기업을 선별하려면 기술 평가 등에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데 경제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정부의 전문성에 제약이 따른다. 대상 기업 선정을 민간 금융기관에 위탁하면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해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국내에서도 오래 논의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공공기관의 이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직접 지원제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들 기관은 방대한 조직을 갖게 됐다. 지원정책을 간접적, 다단계 방식으로 전환하면 소수의 금융 전문가를 제외하고 기관의 조직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는 셈이다. 그러기에 공기업 구조조정은 외압을 통해 추진했어야 하는데 정부 스스로 후퇴시켰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 국민은 대부분의 일에 정부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서비스가 공짜가 아니라 세금 부담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이다. 민자 도로가 좋은 예이다. 민자를 유치해 도로를 건설하려면 투자자에게 시장 수익률을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건설한 도로보다 통행료가 비싸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재추진해야

우리 국민은 그 차이를 용납하지 못한다. 돈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부자만 빠른 길로 다닌다는 불평이다. 결국 정치적 압력으로 통행료에 큰 차이를 둘 수 없으니 대신 세금을 걷어 민간 투자자에게 운용수익을 보장해 줄 수밖에 없다. 국민 스스로 위화감을 강조한 결과 통행료 부담보다 악수를 둔 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 역할을 강조하다 보니 작은 정부도 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구아수 감사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역행했던 공공 부문 구조조정을 재추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채권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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