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 왜 上席에 안두나” 회의장 뛰쳐 나간 감사님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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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 ‘정치권 감사’들의 돌출 행동 백태

지난해 7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 출연기관의 한 기관장이 취임 직후 간부회의를 처음 열었을 때의 일.

정치권 출신인 감사가 회의장에 도착해 간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자리 배치를 확인한 뒤 갑자기 화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헤드 테이블에 기관장과 나란히 자리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감사는 기관장과 더불어 임원이기 때문에 직원에게 기관장과 같은 테이블의 자리를 요구했으나 회의장에 가 보니 그렇게 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표준과학연구소, 원자력연구원 등 대덕연구단지에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19개나 있다. 최근 이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이사장이나 감사 자리에 정치권 출신들이 오면서 이공계 출신이 압도적인 연구기관의 문화와 정치권의 관행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빚는 일이 잦다.

○판공비 부적절한 사용

22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한 연구기관 감사의 판공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이날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Y 감사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취임할 때 축하 화환을 보내면서 법인카드를 썼다”고 말했다.

Y 감사가 여권 인사들의 각종 행사에 화환을 보내면서 판공비를 사용한 것을 지적한 것.

새천년민주당 출신의 전직 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 이사장은 2005년 판공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가 발각돼 해임되기도 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한 감사는 연구기관이 리더십 강좌의 일환으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와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을 초청하자 보수적인 인물들을 강사로 초빙했다며 행사 관계자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자에게 “이런 강사들은 정치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다른 강좌라면 몰라도 리더십 강좌에는 부적절하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한 연구기관의 감사는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과학기술협회와의 ‘한중 하이테크 엑스포(High-Tech EXPO) 2006’에 참석했다. 그러나 4일 일정을 다 소화하지 않고 이틀 만에 돌연 귀국했다. 중국 측 상대방이나 같이 간 일행들이 자신보다는 동행한 간부를 연구기관의 대표로 인정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기분이 나빠 먼저 돌아왔다”며 “기관장을 제외하고는 감사가 유일한 임원이며 동행한 임원은 기관장을 대신해서 간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출신끼리 따로 모이는 감사들

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인 H연구원의 감사는 2005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는 대덕연구단지 내 A 연구원장이 동창생인 정부 고위 관료와 만나 자신의 인사를 부탁했다는 내용의 e메일을 정부 요로에 보냈다. A 원장은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A 원장에게 사과한 뒤 고소 취하를 부탁해 사건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은 “A 원장의 행동이 사실이라면 처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그런 사실을 정부의 힘 있는 사람에게 e메일로 알리는 행동도 연구원들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정치권 출신 감사들이 대전지역공기업감사협의회와는 별도의 모임을 주기적으로 가진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이 모임에 참석한 한 감사는 “감사협의회에 가면 정치권 출신 감사들이 나오기 때문에 만나지만 별도의 모임을 가진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공계 출신들은 정치권 출신 감사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연구소의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나 정치권에 손이 닿아 있어 함부로 불만을 말할 수도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감사원, 공공기관 해외연수-출장 감사▼

감사원은 23일 공공기관 감사들의 외유성 남미 출장 파문을 계기로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해외 연수와 출장 실태에 대해 종합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이날 김조원 사무총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해외 연수 및 출장이 당초 계획에 따라 제대로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관련 예산의 부당 집행 사례와 해외 여비 규정의 적절성 등을 집중 감사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7월 중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남미 출장을 갔던 강신욱 한국소방검정공사 감사가 이날 기획예산처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남미 출장 감사 21명 중 사퇴한 사람은 21일 사표를 낸 최동규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를 포함해 2명으로 늘어났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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