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 늦었지만 불심 두터우니…”…조계사 첫 장애인 수계식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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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조계사
사진 제공 조계사
‘자비로 이끄시고 길을 열어 주신 부처님/남보다 걸음걸이 한 걸음이 늦어 보리수 언덕에 다다름이 멀어도/남보다 말하는 것이 한마디 늦어 부처님 말씀을 다 전하지 못하여도/이제 삼보를 믿는 마음 더더욱 두텁게 하소서.’(뇌성마비 장애우 최명숙 시인의 발원문 중에서)

19일 낮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 불교 사상 최초로 장애우들을 위한 집단 수계(受戒)식이 거행됐다. 수계란 불자나 스님들이 부처의 삶을 살겠다고 공식 서원하는 것으로 일반 불자는 보통 살생과 거짓말, 과음, 사음(邪淫), 도둑질을 않겠다는 ‘5계’를 받는다.

불교는 많은 장애우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종교로 여겨졌다. 산중(山中) 종교이다 보니 불편한 육신을 이끌고 산사까지 찾아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시내에 있는 사찰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웅전까지 진입하려면 문턱이 높아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화장실 출입도 만만치 않은 ‘큰일’이다.

이날의 수계식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불교에 귀의하지 못하는 장애우들을 위해 지관 총무원장의 지시로 특별히 준비한 행사다.

“저희 수계 제자들은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이후부터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부처님만을 믿고 따를 것을 맹세합니다/저희 수계자들은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이후부터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지닐 것을 맹세합니다.”

수계식이 진행되는 동안 장애우들은 두 눈을 꼭 감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일부 장애우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는 최명숙 시인은 “장애인으로서 법회에 참석하기도, 교리를 공부하기도, 스님을 뵙기도 어려웠는데 이처럼 법회를 열어 줘 너무 감사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조계종은 조계사와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등 사찰을 지정해 향후 장애인 법회를 따로 개최할 예정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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