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농민 김주성 씨의 경우

  • 입력 2007년 5월 23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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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보리밭은 보리가 열병식을 하는 것 같다.” 동아일보 민병문 기자는 1973년 5월 경남 김해군 가락면의 한 농촌을 찾았다. 그곳 새마을지도자 김봉수 씨 집에서 15일간 묵으며 농촌 실태에 관한 기사를 시리즈로 쓴 그는 보리밭을 보며 열병식을 떠올렸다. 하지만 당시의 농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못했다. 1970년 국민의 45%이던 농가 인구 비중이 10년 후 28%로 줄어들 만큼 농촌사회가 급속히 해체되던 시기였다. 이농(離農)은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농촌의 궁핍이 그 배후에 있었다. 민 기자가 쓴 기사도 당연히 어둡고 무거웠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민 기자의 취재를 곧잘 돕던 김 씨의 아들 주성 군이 이제는 김해에서 농사를 짓는다. 시설재배를 하는 그는 며칠 전 고추 모종 출하를 끝내고 잠깐 여유를 즐기는 중이지만 7월 초가 되면 배추 모종 출하로 다시 바빠진다. 김 씨의 농장 ‘김해육묘’는 전국에서 고추 및 배추 모종을 가장 많이 내는 곳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의 농장은 거의 자동화돼 농장이라기보다는 공장 같다. 그는 최근 두 딸을 미국과 뉴질랜드에 해외연수를 보낼 만큼 윤택하게 산다. 현재 김 씨는 육묘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비장(秘藏)의 카드’를 준비 중이다.

김봉수-주성 씨 부자(父子)는 한 세대 동안 한국의 농업이 얼마나 빠른 변화를 겪었는지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아들 주성 씨가 ‘2007년의 한국 농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장개방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지만 서울 서대문의 농협중앙회 건물에는 지금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결사반대’ 구호가 걸려 있다.

1994년 다자간 무역협상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되자 “이제 농업은 다 망했다”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그랬는가? UR 타결 당시 개방 피해가 크다는 이른바 ‘민감 품목’은 30개가량이었다. 13년이 흐른 지금 한미 FTA로 피해가 우려되는 농산물은 쌀 쇠고기 고추 마늘 양파 꿀 정도다. 그 사이 많은 품목이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어떤 품목이든 경쟁에 노출되지 않으면 경쟁력은 길러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3월 “농산물도 상품이고, 상품으로서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를 더 못 짓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하기 힘들지만 해야 할 이야기를 한 것이다. 농림부는 올해 처음으로 보리 수매가를 인하했다. 쌀도 2014년 이후에는 개방을 피하기 힘들다. 플래카드를 내거는 일보다는 개방 대비가 급하다.

정말 걱정되는 일은 또 있다. UR 타결 후 농업구조조정자금이 마구 풀릴 때 경남 밀양시 산내면의 한 농장은 4만여 평의 터에 120억 원이나 들여 시설투자를 했다. 당시 국고에서 50% 보조, 30% 저리 융자를 해 줘 자기 돈은 20%만 있으면 됐다. 총투자비를 좀 부풀리면 자기 돈 없이도 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대충 투자’가 판을 쳤고 결국엔 부도가 속출했다. 이 농장도 파산해 두어 번 유찰을 겪은 끝에 수년 전 1억3000만 원에 낙찰됐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또 정책자금이 풀린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기 쉽다. 외국과 FTA를 맺는 중요한 목적은 ‘개방을 통한 산업구조의 선진화’다. 그러나 정책자금을 잘못 풀면 산업이 선진화되기는커녕 퇴보한다. 산내면의 그 농장 꼴이 나는 것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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