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을 깔아뭉개라” 악동의 액셀러레이터

  • 입력 2007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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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황금종려상 타란티노 ‘데스프루프’로 칸 다시 노크

1994년 ‘펄프픽션’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쿠엔틴 타란티노(44)가 13년 만에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작에 내놓은 작품은 그의 녹슬지 않는 악동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었다.

1960, 70년대 하드보일드 액션영화의 탈을 쓰고 남성중심의 할리우드 영화문법을 통째로 뒤집어 버린 영화 ‘데스프루프(Deathproof)’. 21일 밤(현지 시간) 프랑스 칸 드뷔시 극장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에서 백인 남성영웅의 상징인 커트 러셀을 앞세워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자동차 추격전을 펼쳐 낸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두 대의 자동차가 정면충돌하는 장면은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이후 자동차 액션의 단골소재(클리셰)가 된 ‘치킨게임’을 비웃듯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부딪치며 끊임없이 추격전을 펼치는 장면은 스티브 매퀸 주연의 ‘불릿’이나 진 헤크먼 주연의 ‘프렌치 커넥션’도 울고 가게 할 만큼 격렬하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 추격 장면의 진짜 주인공이 여배우들이란 점이다.

영화는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닌 전편과 후편으로 구성된다. 둘을 연결하는 존재가 커트 러셀이 분한 ‘스턴트맨 마이크’다. 영어로 ‘waterproof’에 해당하는 번역어가 방수(防水)라면 ‘deathproof’는 방사(防死)쯤 될 것이다. 죽음을 피해간다는 뜻이다. 전형적 텍사스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마이크는 이런 의미심장한 단어를 자신의 차에 새기고 떠돌아다니는 의문의 인물이다.

그는 전편에서 텍사스의 유명 라디오 여성 DJ ‘정글 줄리아’를 포함한 3명의 여성을 몰래 노리고 접근한다. 몸매 좋고 입심 좋으며 남자 앞에서도 두려울 게 없는 줄리아 일행은 인상 험악하고 아드레날린 가득한 마이크 앞에서도 밀리지 않는 뱃심을 보인다. 마이크는 그런 줄리아 일행의 차와 정면충돌도 불사하며 자신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무대를 테네시로 옮긴 후편에서 마이크는 다시 4명의 여자 일행이 모는 차를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얼마 안 가 끔찍한 후회로 바뀐다.

‘데스프루프’는 여성 액션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 ‘킬 빌’ 연작과 또 다르다. ‘킬 빌’이 액션영화 장르에서 남자의 역할을 여자로 대체하는 유희에 머물렀다면 ‘데스프루프’는 이를 넘어 남성 우월적 영화계의 문법 자체를 뒤집어버리는 혁명을 이뤘다. 특히 영화 마지막, 20세기 남성미의 마지막 상징과도 같은 커트 러셀이 영화 속 비주류 여성들에게 무참하게 무너지는 장면은 웬만한 남자들이라면 아연실색할 만큼 충격적이다.

35명의 황금종려상 수상자들이 제작한 ‘그들 각자의 영화에게(To Each His Own Cinema)’에 유일한 여성 감독인 제인 캠피언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제목에 ‘His’라는 남성소유격이 포함돼 있다. 20일 간담회에서 캠피언 감독은 이를 의식한 듯 영화계의 고질적 남성 우월주의를 비판하며 여성문법에 맞는 영화가 좀 더 많이 제작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데스프루프’는 분명 여성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수백 편의 페미니즘 영화보다 더 통쾌하고 확실하게 남녀차별적인 영화문법을 탱크로 밀어버렸다.

칸=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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