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교수의 소비일기]‘무제한 서비스’의 무제한 폐해

  • 입력 2007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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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2년여 전 휴대전화를 장만해 줬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청소년이 이용하던, 월정액으로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에 가입했지요. 뭐 그렇게 많이 쓸까 싶었지만 워낙 기본료가 저렴해 어차피 낼 정도의 비용으로 생각했습니다.

처음 휴대전화를 만져 본 아이가 수시로, 정확하게 말하면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날리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제한까진 필요 없다던 아이였는데….

2년 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쓸 줄 알았던 휴대전화는 수리마저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많이 썼다는 겁니다. 물론 그 사이 자판이 제대로 눌러지지 않아 여러 번 애프터서비스 센터에 다녀왔었지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명색이 전자제품인 휴대전화가 내구재가 아니라 소모품이라는 것을!

새로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어느덧 아이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 된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고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허, 휴대전화에 문외한이던 아이는 그 사이 베테랑이 됐더군요. 사고 싶은 제품도 미리 확실히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년 새 통신시장 환경(?)이 매우 달라져, 신규 가입자는 더는 무제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즉, 통신사를 바꾸지 않은 기존 가입자만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더라고요.

아이는 고민 끝에, 그래도 다른 통신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를 고집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쓸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꼭 그 탤런트가 광고하는 전화기를 갖고 싶었고, 다행히 같은 비용으로 월 2000통까지는 보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요즘 아이는 월말이 되기 전에 한도를 다 쓰고는 전전긍긍 속상해 합니다.

사실 2000통도 적지 않은 양인데!!!

차라리 ‘무제한 서비스’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아니 현명한 부모가 그런 서비스의 폐해를 사전에 알아차리고 피하게 했더라면, 그래서 아이가 정해진 한도 속에서 아껴가며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월 2000통이라는 엄청난 메시지를 보내고도 이렇게 속상해 하지는 않았을 것을…. 안타까움조차 듭니다.

생각이 부족한 어른들에 의해 미래 사회의 구성원인 아이들이 ‘건강한 소비자’로서의 중요한 학습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입니다.

아, 그 사이 기대치 못한 소득도 얻었네요. 통화 이외에는 휴대전화의 기능을 몰랐던 아빠와 엄마가 아이의 문자메시지를 읽고 답할 정도로 정보화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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