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12>우진프라스틱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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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등 스포츠용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버클 제조업체 우진프라스틱은 품질 좋은 최고급 플라스틱 버클을 만들어 세계 시장의 3분의 1을 석권했다. 경기 구리시에 위치한 우진프라스틱 본사 공장에서 직원이 버클을 제작하기 위한 금형을 최종 손질하고 있다. 구리=김상훈  기자
배낭 등 스포츠용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버클 제조업체 우진프라스틱은 품질 좋은 최고급 플라스틱 버클을 만들어 세계 시장의 3분의 1을 석권했다. 경기 구리시에 위치한 우진프라스틱 본사 공장에서 직원이 버클을 제작하기 위한 금형을 최종 손질하고 있다. 구리=김상훈 기자
백남일 우진프라스틱 사장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버클의 샘플을 걸어 놓은 벽 앞에서 이 회사 플라스틱 버클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리=김상훈  기자
백남일 우진프라스틱 사장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버클의 샘플을 걸어 놓은 벽 앞에서 이 회사 플라스틱 버클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리=김상훈 기자
《“배낭의 버클을 한번 뒤집어 보세요. 우리 상표가 보일 겁니다.” 우진프라스틱 백남일 사장의 말이다. 배낭을 벗어 버클을 뒤집어 봤다. ‘WOO JIN DURAFLEX’(우진 듀라플렉스)라는 로고가 뚜렷했다. “좋은 배낭은 다 우리 버클을 써요. 나이키, 노스페이스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에는 빠짐없이 버클을 판매합니다.” 이 회사는 1년에 10억 개가량의 플라스틱 버클을 만들어 판매한다. 버클 1개의 가격은 크기와 용도에 따라 다양하지만 가장 비싼 제품이 150원 정도다. 이 회사의 1년 매출액이 약 300억 원이니 제품 1개의 평균 단가는 약 30원인 셈이다.》

이는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저가(低價) 버클을 만드는 중국 업체는 3분의 1 가격에 제품을 내놓는다. 가장 큰 경쟁사인 일본의 YKK조차 우진프라스틱보다 15% 저렴한 제품을 판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은 우진프라스틱이 압도적이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지난해 플라스틱 버클 수요는 약 30억 개. 이 가운데 10억 개가 저가 시장에서 팔리며, 20억 개가 고가 시장 수요다. 우진프라스틱은 이 고가 시장 가운데 50%를 점유하고 있다. 시장이 지금보다 작았던 4∼5년 전에는 점유율이 70%에 이른 적도 있다.

● 품질에만 집중한다

우진프라스틱이 자리 잡은 곳은 경기 구리시 갈매동. 서쪽으로 서울 중랑구 신내동이 있고, 동쪽으로는 남양주시 퇴계원과 이웃한 지역인데 그동안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및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의 규제로 묶였던 곳이라 눈에 띄는 것은 띄엄띄엄 있는 식당과 꽃집 등이 전부였다. 우진프라스틱은 이 동네의 골목을 한참 뒤지고 들어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찾아가기도 힘들었지만 공장 내부는 더 복잡했다. 처음 본 우진프라스틱 공장은 미로 같았다. 철제 임시건물이 정신없이 뒤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이기 때문에 개발 제한, 고도 제한 등에 묶여 할 수 없이 작은 땅에 설비를 구겨 넣어 이렇게 됐다고 했다.

평범한 농촌 마을에 대충 지은 철제 임시건물, 그것이 우진프라스틱의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대당 5억 원이 넘는다는 기계가 쉴 새 없이 금형을 깎아 내고 있었다.

이렇게 깎인 금형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항공기 제작 등에 사용한다는 미국 화학업체 듀폰사(社)의 최고급 플라스틱을 붓는다. 우진프라스틱은 한국에서 현대자동차에 이어 듀폰의 플라스틱 원료를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고급 기계와 원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비싼 버클이 담기는 곳은 파란색 대형 쓰레기통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버클을 담아 둘 만한 큰 통으로는 이만 한 게 없다고 했다. 그래도 쓰레기통이라니….

백 사장의 사무실에 찾아가 봤다. 테이블과 집무를 보는 책상 위에 서류 및 참고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서류에는 곳곳에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잘 정리된 ‘사장실’이라기보다 업무 마감을 코앞에 둔 사무직 직원의 책상 같았다. 백 사장은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거듭 “운이 좋았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절제가 느껴졌다. 품질을 좌우하는 부분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필요 없는 부분에서는 과감히 비용을 줄였다. 경쟁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기본이었다.

●그들을 찾아오게 만들라

백 사장은 1979년 우진프라스틱을 창업했다. 직원도 없이 혼자 하는 일이라 다른 회사가 만드는 플라스틱 제품을 똑같이 모방하는 게 유일한 일감이었다.

그러던 중 1985년 플라스틱 산업 전시회에 참가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배낭에 사용되던 버클은 대부분 쇠로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든 버클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백 사장은 플라스틱 버클에 모험을 걸었다. 플라스틱 버클 제조 회사가 얼마 없어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봤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전시회를 돌며 선진국 제품의 샘플을 모았고, 수없이 실험을 반복하며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바이어에게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백 사장은 이를 위해 1992년부터 15년 동안 매년 수십∼수백 가지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렇게 모은 샘플이 현재 1400종이 넘는다.

바이어가 필요한 제품을 쉽게 고르도록 주요 바이어의 사무실마다 벽 하나를 가득 채우는 샘플 보관함을 만들어 준 것도 아이디어였다. 벽 하나를 가득 채운 보관함의 편리함 덕분에 바이어들은 우진프라스틱과의 거래를 선호했다. 이 방법은 경쟁사인 YKK가 따라 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남들의 제품을 모방하던 시절에는 바이어의 힘이 막강했다. 제품 디자인도, 심지어 가격조차도 바이어가 정해 줬다.

하지만 우진프라스틱의 이름으로 고급 버클을 개발하자 이런 관계가 변했다. 가격도 백 사장이 직접 정했고, 바이어는 백 사장이 미리 만들어 놓은 버클 가운데 필요한 제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친환경 버클’도 선보였다. 옥수수로 만든 신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백 사장은 올해로 73세다. 하지만 최근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고급 플라스틱 버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일을 그만두면 오히려 병이 날 것”이라며 “지금도 머릿속에 플라스틱 버클을 활용한 다양한 신제품 구상이 수십 가지 떠오른다”고 말했다.

구리=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백남일 사장 ‘영업 비법’

“세계시장 높은 벽 전시회마케팅으로 넘어”

우진프라스틱의 플라스틱 버클은 영하 40도에서도 부러지지 않고, 영상 50도에서도 녹지 않는다.

더운 곳과 추운 곳 어디서든 잘 버텼다. 그런데 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으면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진프라스틱은 전시회를 통해 제품을 알렸다. 고객이 기업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전시회에는 세계 각국의 동종업계 종사자와 관련 산업 바이어가 한데 모이기 때문이다.

백남일 우진프라스틱 사장은 ‘전시회 마케팅’을 위해 우선 영향력 있는 전시회부터 파악했다.

1990년대 초 그는 7, 8회의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알맞은 전시회를 발견했다.

군수산업 전시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샷 쇼’와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의 아웃도어 쇼가 그때 발견한 전시회였다. 두 전시회는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 최대 수준을 자랑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유명 쇼에 비용을 몰아 썼다. 유명 쇼에서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규모도 키운 대신 작은 전시회 수십 건은 모두 무시해 비용을 아꼈다.

이익의 일부를 나누는 조건으로 각국의 세일즈 브로커도 고용했다. 백 사장은 “좋은 제품은 좋은 재료와 기술만 있으면 개발하기 그리 힘들지 않지만 이를 잘 판매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라며 “수출 중소기업은 제품 개발 못지않게 마케팅 역량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구리=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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