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권성택]노벨상? 실험설비부터 갖춰라

  • 입력 2007년 5월 2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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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대학의 지질학 박사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했다. 일본의 대학 실험실에서 단층운동 실험을 한 뒤 큰 지진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논문의 주 저자가 국내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는데 국내 과학계에서 아주 드물면서도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학생이 학위과정을 마치고 나서 앞으로 국내에서 우수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외국에서 훌륭한 연구를 하고 귀국한 국내 지질학자라도 자신이 외국에서 하던 연구를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계속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주된 이유는 그들이 사용하는 실험설비를 갖추기 힘든 데다 이와 관련된 국내 과학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연과학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토착화가 필요하다. 과학의 토착화란 독자적 과학 능력의 증진을 의미한다. 또 연구 결과가 산업기술과 연결돼 경제에도 큰 기여가 예상되는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과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토착화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연 과학은 자연에 내재하는 원리를 밝히려는 것이 주목적인데 ‘관찰과 실험’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연 현상을 이론화한다. 지질학 역시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므로 동일한 방법을 이용한다. 자연과학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장치가 필요하다. 실험장치는 과학 분야에 따라 저렴하고 간단한 것부터 비싸고 복잡한 것까지 다양하다.

과거에 비하면 경제 여건의 발전과 더불어 현재의 연구 환경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과학의 토착화를 실현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점이 부족하다. 미국에서 연구할 때 대학의 교수 스카우트 과정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미국 대학은 자연과학 분야의 교수를 뽑을 때 우선 그가 연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미리 마련한다. 연구 환경에는 실험시설 및 실험시설을 잘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조 인력과 시설 등 모든 행정 여건이 포함된다. 신임교수가 필요로 하는 실험시설이 없다면 적어도 필요한 재원 및 공간을 새로 마련해서 그가 부임했을 때 원하는 실험시설을 갖춰 연구수행에 지장이 없게 해 준다.

훌륭한 과학자는 연구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 곳에는 갈 마음이 없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말인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를 훨씬 많이 본다. 국내에 1990년 설립된 공동기기연구센터는 자연과학의 연구 활동에 기여한 바가 크다.

이 센터는 경제가 어려워 연구비가 부족하던 시절에 하나의 해결책으로 설립된 기관이어서 학문적인 독창성을 추구하는 요즘에는 많은 제한점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각적인 실험을 할 수 없고, 연구자의 필요에 부합하는 맞춤형 실험기기가 없고, 연구 목적에 맞게 실험기기를 변형하기 힘들다.

지나치게 덩치가 크거나 혹은 초고가인 실험설비를 제외하고는 이런 센터에 있는 많은 실험설비를 능력 있는 연구자가 직접 옆에 두고 쓸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창의적이고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는 실험실은 많은 경우 뛰어난 연구자가 관리하는 소규모의 실험실이다.

국내 연구 환경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과학기술부 및 교육인적자원부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과학의 토착화가 빨리 이뤄지려면 훌륭한 과학자가 독자적인 실험설비를 갖고 창의적인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권성택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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