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재동]‘한국농업 체질개선’ 시간은 빠듯한데…

  • 입력 2007년 5월 21일 03시 05분


코멘트
6월의 수확기를 한 달가량 앞둔 요즘, 보리 농가는 수확의 기쁨 대신 고민에 빠져 있다.

보리 소비가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다양한 캠페인을 열며 소비를 촉진해 보지만 국민 식생활의 변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젠 정부에서도 “제발 많이 심지 말라”고 말릴 정도로 보리는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소비가 줄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경제원리다. 하지만 보리 값은 건국 이후 한 번도 낮아진 적이 없었다. 정부가 농가 보호를 위해 보리를 매년 고가(高價)에 매입해 창고에 넣어 뒀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인 보리 재고는 올해 20만 t을 넘는다고 한다.

보리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농업 정책은 항상 이렇게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농민들은 일단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농산물을 생산해 놓고 이것을 팔아 달라고 정부에 맡겼다. 그러면 정부와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많은 예산을 들여 농가를 지원했다.

이 과정에 소비자는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사람들이 어떤 농산물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 정부 보조를 받는 농가에서는 ‘계속 심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변화에 소극적이었다. 보리 소비량은 이미 지난 반세기 동안 수십분의 1로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개혁의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한국 농업의 체질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방패막이만 더 높게 쌓았다. 정부의 대안은 오직 보조금이라는 진통제만 주는 것뿐이었다.

그 결과를 보자. 한국의 농산물 값은 외국산의 3, 4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당장 개방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한국 농업의 현실이 이렇다. 농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쌀 시장도 좋든 싫든 2015년 이후에는 개방해야 할 처지다.

결국 정부는 최근 보리 수매가를 사상 처음으로 인하하고 쌀 농가에 대한 보조금도 줄이겠다는 대책을 세웠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평가할 만한 정책 변화다.

본보 18일자 A1·8면, 19일자 A2면 참조
▶보리수매가 59년만에 첫 인하 방침
▶쌀 가격경쟁력 외국산 수준으로
▶보리 수매제 2012년 완전 폐지 추진

정부와 농가는 이번 곡물 산업 구조조정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봉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유재동 경제부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