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희]‘낮은 사람’이 ‘높은 세상’을 살아가기란

  • 입력 2007년 5월 2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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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을 짚고 천천히 걷는 내게 간혹 사람들이 왜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에서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육체적 힘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타면 아주 낮은 턱도 올라가는 데 힘이 든다. 팔 힘을 이용해서 앞으로 한숨에 밀고 그 탄성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게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니 서울 거리에서 휠체어를 타면 사방팔방이 다 넘지 못할 장벽이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면 문자 그대로 ‘낮은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이 ‘높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세상에 ‘낮은 사람’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참 힘들다. 턱을 겨우 올라왔다 해도 자동문이 아니면 누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해도 그저 전시용일 뿐, 너무 좁아 문을 열어 놓은 채 볼일을 보아야 할 때도 있다. 화장실의 거울도 너무 높아 제대로 볼 수 없다. 현금지급기에도 손이 닿지 않아 누군가에게 비밀번호를 주지 않으면 돈도 찾을 수 없다. 아주 완만한 경사도 올라갈 때는 무척 힘들고 내려올 때는 가속이 되기 때문에 누가 뒤에서 잡아 주지 않으면 그대로 고꾸라지기 십상이다.

휠체어로 넘기 힘든 ‘사방의 벽’

내가 휠체어를 사용하는 곳은 주로 국내외 공항에서이다. 공항은 너무 넓어서 목발 짚고 걸어서 탑승구까지 가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비행사 직원들이 나를 휠체어에 태워 비행기까지 데려다 준다. 내가 주로 다니는 곳은 미국이지만 경유지로 일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재미있는 것은 세 나라의 장애인 탑승객에 대한 태도가 대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은 비만한 사람이나 장애인을 위해 공항에 특별히 대기 중인 직원이 있다. 완전히 사무적이지만 휠체어를 다루는 솜씨는 훈련을 받은 듯 전문적이다. 나중에 약간의 팁을 주면 서로의 편리한 사무는 끝난다. 일본 공항은 또 다른 경험이다. 마치 공항 전체가 나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 마치 깨어지기 쉬운 크리스털 제품이라도 다루듯 조심조심 휠체어를 밀어 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본 공항의 서비스정신은 투철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탑승객들은 물론 승무원들이 떠날 때까지 비행기 앞에서 하염없이 휠체어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기 일쑤다. 헐레벌떡 달려온 직원은 마치 짐짝 부리듯 한 손으로 대충 휠체어를 운전하면서 또 다른 손으로는 다른 직원들과 통화하며 사무를 본다. 장애인 승객이 많다고 자기들끼리 대놓고 불평도 한다. 한마디로 바쁘게 돌아가는 공항 업무를 훼방 놓는 너무나 귀찮은 존재, 제발 없으면 좋을 존재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지호를 만났다. 지호는 선천성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법학과에 다니는 지호는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 이번 달에도 엘리베이터가 있거나 1층에 있는 여섯 개의 독서실에 신청을 했는데, 다 거절당했다고 했다. 여섯 군데 다 똑같은 이유였다. 집중을 해야 하는 민감한 고시생들이 휠체어 소리에 대해 불평할 것이고, 휠체어 바퀴가 더럽다는 것이다.

나는 지호에게 괜히 공부 안 하고 장소 탓한다고 눈 흘기며 야단쳤지만, 돌아서는 내 마음은 짠했다. 정보도 교환하고 서로에게 자극도 되므로 공부하는 장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서실서 거부당한 고시생 지호

휠체어는 장애인들의 신발이다. 바퀴가 비장애인들의 신발보다 더 깨끗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더럽지도 않다. 그리고 공부에 방해가 될 만큼 소음이 나지도 않는다. 만에 하나 소리가 좀 난다 해도 그런 것도 이해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예 사법시험을 볼 자격도 없지 않을까. 신림동의 여섯 개 독서실은….

며칠 전에 쓴 이 글은 이렇게 신림동 고시촌의 여섯 개 독서실 이름을 대며 지호를 받아 줄 것을 부탁하며 끝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본래의 취지야 어찌됐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말, “불구로 태어나는 장애아의 낙태는 용납한다”는 말이 기사화된 것을 보았다. 불구로 생산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태어나지도 말라는 뜻은 아닌지. 그런 세상에 대고 무슨 말을 할까. 아예 입을 다물기로 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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