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푸틴’…청년호위조직 양성, 대외 스파이활동 강화

  • 입력 2007년 5월 2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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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넘치는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알렉세이 2세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왼쪽), 라브르 해외러시아정교회 대주교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분열된 교회 재통합을 축하하기 위해 19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행사장에 함께 입장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자신감 넘치는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알렉세이 2세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왼쪽), 라브르 해외러시아정교회 대주교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분열된 교회 재통합을 축하하기 위해 19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행사장에 함께 입장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문제로 갈등을 빚어 온 러시아가 대내적으로는 청년 정치조직 육성 및 활용, 대외적으로는 스파이 네트워크 재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오일 머니로 자신감을 회복한 푸틴 대통령이 마치 냉전시대 미국-소련 양자대결 당시의 위상 회복을 노리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 서방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신(新)차르’ 시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 위협적인 푸틴 대통령의 청년 호위조직 세력 확대

에스토니아 정부가 수도 탈린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 전몰장병 동상을 철거한 지난달 27일부터 에스토니아의 언론사, 은행, 정부기관 전산망을 겨냥한 ‘가상전쟁(Virtual War)’이 본격화됐다. 강대국이 이웃의 약소국을 겨냥한 세계 최초의 대규모 사이버 전쟁인 셈이다. 이로 인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인터넷 보안 전문가들은 방어망 구축에 매달려야 했다고 뉴스위크 최신호(28일자)가 보도했다.

그러는 동안 모스크바에서는 덜 ‘세련된’ 방식의 공격이 이어졌다. 푸틴 대통령이 만든 청년 정치운동조직 ‘나시(Nashi·우리의 것이라는 뜻)’는 주러 에스토니아 대사의 기자회견장을 급습해 스프레이를 뿌리고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나시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에 충격을 받은 푸틴 대통령이 긴급사태가 벌어지면 붉은 광장에 뛰쳐나와 자신을 지지해 줄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2004년에 만든 조직. 조직원이 10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한 나시는 크렘린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푸틴 대통령 개인에게 광적인 충성을 바치는 준군사조직으로 성장했다. 가스프롬 같은 국영기업은 물론이고 크렘린에서의 인턴 활동을 보장받는 ‘당근’도 괄목할 만한 성장의 배경이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에스토니아와 폴란드 등 옛 소련 영향권에 있던 국가에 러시아의 힘을 과시하자고 선동한다. 대내적으로는 정권 반대파인 미하일 카샤노프, 2004년 푸틴 반대 모금활동을 한 억만장자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등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잠재세력을 인민의 적이라고 규정하며 타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옛 소련의 청년정치조직인 ‘콤소몰(Komsomol·공산주의청년동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 대(對)서방 스파이 활동 냉전시대와 맞먹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스파이 활동도 냉전시대 수준을 넘어섰다.

러시아의 해외 첩보조직은 1990년대 말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동안 함께 힘을 잃었다. 그러나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 대통령이 2000년 취임한 뒤 첩보 조직이 재건됐고 지금은 옛 소련 시절 이상으로 첩보망이 가동되고 있다고 영국의 선데이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전직 KGB 요원인 유리 슈베츠는 “소련 시절엔 외교부나 통상부, 언론기관 등 첩보원들이 해외에서 근거를 둘 수 있는 기관이 제한돼 있었지만 지금은 사기업까지 폭넓게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첩보원들의 주요 활동은 해당 국가의 군사 계획, 하이테크 기술을 캐내고 빼내는 것. 지난해 미국의 잠수함 승무원이 기밀 정보를 빼내려다 붙잡힌 사건도 러시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미국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 승무원은 12년형을 선고받았다.

반년 전 캐나다에서는 위조 여권과 출생증명서로 캐나다 국민 행세를 했던 러시아인이 붙잡혀 추방됐다. 이 러시아인은 KGB의 후신인 해외정보국(SVR) 소속 요원으로 드러났다.

이런 스파이 활동으로 미-러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와 비교될 정도로 악화됐다고 선데이타임스는 지적했다. 여기에다 청년조직을 동원한 푸틴 대통령의 대중선동정치는 뿌리가 약한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조짐마저 보인다. 서방 지도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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