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가벼움… 웃음코드를 바꾸다

  • 입력 2007년 5월 19일 03시 01분


코멘트
"아이쿠~ 얘,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걸 꾸역꾸역 먹니?"(엄마)

"푸하하… 웃기잖아요!"(딸)

"하나도 안 웃기다. 쟨 또 왜 옷을 저렇게 껴입어? 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엄마)

"아 그냥 보고 웃으면 되는 거지!"(딸)

주부 강혜주(51) 씨는 매주 토요일만 되면 딸 임희진(26·대학생) 씨와 다툰다. 바로 임 씨가 즐겨보는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 때문. 지난 달 말 방영된 50회 특집 방송에서는 개그맨 정준하가 잔치국수 50그릇 먹기, 노홍철이 티셔츠 50벌 입기 등 무모한 도전을 펼친 것. 깔깔대고 웃는 임 씨는 "인터넷 화제 동영상에서 즐겨보던 것들"이라지만 강 씨는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맥락 없는 개그, 이것이 바로 인터넷 신인류 '찌질이'가 만드는 C급 문화다.

○ B급 보다 낮은 C급 문화? 찌질이가 만드는 유머코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MBC '황금어장'의 코너 '무릎팍 도사'. 이 코너의 인기 비결은 편집에 있다. 출연진들의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에베레스트 산' 사진이 등장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자막이 등장하고 재미가 없을 땐 '난파선'이 나오는 등 사진이 웃음의 한 몫을 차지한다. 실체는 바로 인터넷 '짤방(짤림방지)' 문화. 자신의 게시물이 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연예인 사진이나 합성 사진 등을 첨부하는 것을 뜻한다.

'무릎팍 도사'의 임정아 PD는 "주 시청자 층이 '찌질이' 문화를 이해하는 인터넷 문화 소비층"이라며 "요즘 PD들은 인터넷을 켜놓고 편집할 정도로 방송 제작할 때 인터넷 유머 코드를 자연스럽게 반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개그맨 이경규가 출연, 인터넷 사이트에서 화제가 된 '규라인'(이경규를 추종하는 방송인들)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어느덧 10년째를 맞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 2007년 현재 그 중심에는 찌질이가 서 있다.

지난해 KBS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얻었던 코너 '호구와 울봉이'에는 제 3의 인물 '김창식'이 등장했다. "~한 사람은?"이라는 질문에 무조건 "김창식 씨?"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이 개그는 인터넷 댓글 유머 '김창식 씨 한보람 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실제 김창식이나 한보람 모두 가공의 인물로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인터넷에는 "혹시 김창식 씨?"라는 의혹 댓글이 줄을 이었다.

'낚였다'라는 표현 역시 찌질이들의 속임수 놀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속았다'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누리꾼들을 상대로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행태를 뜻한다. "이 곳에 유용한 정보가 있으니 오라"며 링크를 걸어놓지만 실제는 악성코드 다운로드 프로그램이나 자신의 미니홈피 사이트 등 전혀 다른 곳이 나오는 것. 그러나 '낚였다'라는 표현은 신조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행동이나 사상이 유치해 마치 '어린애처럼 코 찌질거린다'에서 나온 '찌질이'는 인터넷에서 철없이 댓글을 남기거나 유치한 행동을 일삼는 이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유치함이 낳은 문화는 A급 문화(메이저, 주류 문화), B급 문화(마이너, 비주류)를 뛰어넘는 C급 문화(B보다 더 낮은 수준) 평가를 받지만 이들의 개그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장됐다.

최근까지 유행한 '조삼모사' 시리즈나 '드라군 놀이', 댓글 등수를 따지는 '등수 놀이' 등 온라인 문화부터 '플래시 몹'처럼 해외발(發) 오프라인 문화까지 다양한 놀이 문화가 양산됐고 여기에 싱하형(이소룡의 표정을 극대화 한 캐릭터), 개죽이(대나무에 매달린 강아지) 같은 C급 문화 대표 캐릭터도 생겨났다.

○ 관심과 '나대니즘'의 극대화?

C급 문화가 추구하는 유머 코드는 바로 '맥락없는 유머'. '무한도전'이나 얼마 전 종영된 KBS '개그콘서트'의 '마빡이'로 대표되는 기승전결 없는 개그는 과거 꽁트 개그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스토리가 필요치 않은, 분산적이고 파편화된 웃음을 표방한다. 주제 역시 소소한 일상부터 '미성년자 관람불가' 급의 야한 농담 등 다양하다.

C급 문화의 발산지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웃긴대학'의 이정민 대표는 "성욕, 시기심 등 실생활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 본능을 해학적인 컨텐츠에 '배설'하는 일탈 행위"라고 말했다.

이러한 무의미 문화 코드가 주류 문화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프로슈머' 개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DC인사이드'의 김유식 대표는 "찌질이들의 행동 요인은 1차로 관심, 2차는 유명해지고 싶은 나대니즘('나대다'와 '~이즘'을 합친 신조어)"이라며 "스스로 재미를 만들고 유통시키며 '전국민의 연예인화', '개그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수 문희준으로부터 시작된 연예인 악플러(악성 댓글을 남기는 사람)나 허위사실 유포, 욕설 등은 찌질이의 또 다른 모습. C급 문화의 극단적 재미추구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특히 살인범 신창원을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올리거나 포르노 동영상을 불법으로 유통시킨 일명 '김본좌'라 불리는 인물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댓글로 추종하는 등 삐뚤어진 팬덤도 문제시 된다.

최근 'DC인사이드'에서는 이러한 찌질이 문화를 없애기 위해 '(인생)막장갤러리'를 만들어 아예 악성 찌질이들을 한 곳에 몰아넣었지만 아나운서 박지윤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 이 곳에서 유포되는 등 사회적 물의는 계속 빚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누리꾼들 대부분은 C급 문화를 즐기지만 스스로는 '찌질이'가 아니라고 믿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현재 이들의 문화는 '문화 민주주의'와 '저질문화'의 중심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부분 '찌질이=초등학생'이라 추정하지만 "악플러를 추적했더니 대학생, 대기업 통신회사 직원 등 20대 이상이었다"는 '웃긴대학'의 이 대표의 말은 이를 반증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인터넷 문제아=찌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며 "순간적, 감각적인 인터넷 매체의 속성과 연결되면서 C급 문화가 새로운 웃음코드로 떠올랐지만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제대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C급 문화 속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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