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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癌? 같이 살죠 뭐… 끝까지 포기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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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癌? 같이 살죠 뭐… 끝까지 포기 안 해요”

입력 2007-05-19 03:01수정 2009-09-2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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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황중환 기자

말기 암 환자 김현향(왼쪽), 박정련 씨가 병원에서 만나 서로가 생각하는 ‘내가 바라는 죽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손을 맞잡았다. 사진 제공 세브란스병원

《암을 선고받으면 몸이 주는 고통 이전에 우울 불안 자책 등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암을 인정하지 못하는 ‘적응장애’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는 사람도 있다. 암에 걸리는 원인도 제각각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두 여성 환자의 수다와 전문가 진단을 통해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를 생각해 본다. 병원이 아닌 가정 간호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웰다잉(well dying)’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 점검해 본다.》

■“항암제 대신 남은 인생 즐기고 싶어요”

말기암 김현향 - 박정련 씨 ‘병상 대화’

‘항암제 치료를 계속 받을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말기암 환자들에게 이 질문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의료진과 최선을 다할 것이가, 아니면 남은 삶이라도 의미있게 보낼 것인가 라는 선택과 맞닿아 있다.

말기 암 환자인 김현향(55·여·경기 김포시) 씨와 박정련(60·여·부산 해운대구) 씨. 이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이들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 1층 휴게실에 마주 앉았다.

김 씨는 암이 난소까지 전이돼 두 개의 암 덩어리가 20cm가량으로 커져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임신부로 착각할 정도로 배가 불러 있다. 다행히 극심한 통증은 없어서 견딜 만하다고 했다.

김 씨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투병생활 때문에 포기했던 자신의 생활을 되찾고 싶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썹도 빠지고…. 사람 얼굴이 아니죠. 투병생활은 단순히 생명의 연장에 지나지 않아요.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 뭐가 남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직 유럽이나 이스라엘도 못 가 봤는데….”

최근 뇌에 있는 암 덩어리를 방사선으로 제거한 박 씨의 생각은 달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1999년 유방에 암 덩어리가 발견됐을 때는 크기가 11cm가 넘었죠. 병원에선 깜짝 놀라면서 빨리 수술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때 삶을 한 번 포기했어요. 하지만 수술과 항암제 덕분에 새롭게 생명을 얻었습니다. 암 세포가 폐로 전이됐다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항암제를 쓰면 암이 덜 자랄 테고 그동안 신약이 나올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죠.”

박 씨는 머리카락이 없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얼마 전 태어난 손자는 할머니가 원래 머리카락이 없는 줄 알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내 몸에 더는 화학물을 넣고 싶지 않아요. 치료가 힘든 게 아니라 치료받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힘들어요. 가족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망설여지긴 해요. 80세 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신데….”(김 씨)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암은 원래 고쳐지지 않는 거잖아요. 암하고 같이 살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약(항암제)을 맞으면 일단 안심이 돼서 좋아요.”(박 씨)

“7년 전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내일모레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못 한 승마도 배워 보고 수영뿐만 아니라 헬스클럽에도 다니고 뭐든 열심히 했죠. 암이 난소에서 커지기 전까지 웰빙 생활을 누렸지요. 얼마 안 남은 삶을 며칠 더 연장해 봐야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통 없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은 잠시 슬프겠지만 곧 적응이 될 거예요. 참, 시신 기증은 꼭 할 생각이에요.”(김 씨)

“전 영정도 마련하고 묏자리도 준비한걸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겨 잘 견디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요즘은 주식에 재미를 붙였어요. 돈을 번다기보다 사고팔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다른 암 환자들은 집에서 왕처럼 떠받든다는데 가끔은 억울해 열 받을 정도입니다. 하하.”(박 씨)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는 것이 최대 목표예요. 돈을 모아야 하는데 항암제 비용으로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쓴다는 게 너무 아까워요. 마지막 순간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조용한 요양원에 가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딸이 시집가는 것을 못 볼까 봐 걱정이죠. (자식들에게) 그게 가장 미안해요.”(김 씨)

“저는 마지막 순간 병원에 있을 것 같아요. 의사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끝까지 치료를 받아 볼래요. 나에게 쓸 약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가장 두려운 것은 아마도 병원에서 오지 말라고 할 상황일 겁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절망스러울 것 같은데….”(박 씨)

“항암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언제까지 얼마나 받아야 하나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마치 희망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얼마 안 남은 생이기에 그동안 못 했던 일을 하며 정말 잘 지내다가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갈수록 간절해집니다.”(김 씨)

두 사람의 수다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들의 생각은 달랐지만 남아 있는 삶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다는 데는 일치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온몸에 호스 주렁주렁 달고 사느니…”

장기현(73·서울 강남구 수서동) 씨는 2005년 12월 위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지난해 8월부터 자택에서 가정 치료를 받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간호사가 집으로 와서 진통제와 영양제를 놓아 준다. 비용은 1회 2만 원 정도.

장 씨의 일상은 암 발병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10%도 안 되는 생존 가능성을 믿고 몸에 호스를 주렁주렁 매달고 사느니 짧은 시간이나마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다 가는 게 마지막 정리가 아니겠느냐” 고 말했다.

장 씨처럼 가정 간호를 받으며 집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말기 암 환자가 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다. 가정 간호에 적용되는 건강보험(1회당 치료비의 80% 지원) 횟수가 월 8회로 제한돼 매달 12∼16회 간호가 필요한 말기 암 환자는 부담이 크다.

가정간호사회 손명희 사무국장은 “많은 병원이 가정 간호를 오랫동안 병상을 차지하는 장기 입원 환자를 줄이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가정 간호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도와주는 호스피스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지만 역시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한국호스피스협회 송미옥 총무는 “호스피스 간호는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라며 “선진국에 비해 호스피스와 전문 병원이 많지 않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송 총무는 “환자들이 호스피스 간호를 원하더라도 보호자들이 끝까지 병원 치료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호스피스 간호에 대해선 아직까지 건강보험수가가 정해져 있지 않다. 미국, 프랑스, 일본, 대만 등은 호스피스 간호에 대해 별도 보험수가를 적용하도록 제도 정비를 마친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내년에 호스피스 수가 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 중이지만 시범사업 기간 등을 감안하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삶의 질도 문제다. 이들의 통증을 덜어 주는 제도적인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

암 환자의 경우 미국에서는 항암제로 치료하는 종양 전문의와 통증을 치료하는 완화의학 전문의가 함께 진료한다. 종양 전문의가 치료에 실패하면 완화의학 전문의가 환자의 통증을 줄여 주고 심리적인 안정을 책임진다. 환자가 숨질 때까지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염창환 교수는 “국내에선 암 종양을 치료하다 가망이 없으면 의료 서비스가 중단돼 환자의 불신을 사는 경우가 많다”면서 “항암 치료나 수술은 3차 진료기관에서 받고 완화 치료나 돌봄 서비스는 병상에 여유가 있는 2차 진료기관이 분담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는 “급성질환 치료를 중심으로 운영돼 온 대형 병원들이 말기 암 환자나 만성질환자를 위한 병상 확보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법률상 환자 자신이 평소 죽음을 준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국 의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환자가 의식을 잃어 치료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해 작성하는 ‘사전 의료지침’이 있다. 법률적으로 의사의 치료 한계를 정해 놓은 문서다.

미국 환자들은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담은 ‘생존유언’을 통해 생명 유지 장치나 강제적인 영양 공급 등 연명을 위한 치료를 받지 않을 의사를 밝히고 법적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 미국의 49개 주가 생존유언을 법제화했다. 일본에서는 의료진의 96%가 환자의 생존유언을 따르고 있다.

의료전문 법률사무소 히포크라의 박호균 변호사는 “국내에선 환자가 사전에 생명 유지 장치 제거 의사를 밝히고 가족이 이에 동의하더라도 의사가 생명 연장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판단하면 생명 유지 장치를 뗄 수 없다”면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어도 민·형법상의 책임 문제로 인해 존엄한 죽음을 맞을 환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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