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내가 먹은 게 나

  • 입력 2007년 5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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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소년’ 그림=초 신타. 비룡소 펴냄
‘양배추 소년’ 그림=초 신타. 비룡소 펴냄
길 가던 양배추 소년, 돼지 아저씨를 만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는데요. 돼지 아저씨는 배가 고팠나 봐요. 너를 좀 먹어야겠다고, 돼지 아저씨가 양배추 소년을 붙잡자 양배추 소년이 말했지요.

“나를 먹으면 양배추가 될 거예요!”

네가 나를 먹으면 너는 내가 된다. 그건 남에게 먹혀야 하는 운명의 약자들이 말로 할 수 있는 가냘픈 저항이겠습니다. 나를 먹으면 너도 약해져서 나처럼 남에게 먹힐 수 있다는 논리도 되죠. 당장 배고파서 죽을 것 같은 존재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봐야죠. 그게 식물에 있는 자연적인 독성이고 좋지 않은 맛과 냄새로도 나타납니다.

다른 존재를 먹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 우리 인간이나 돼지 아저씨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무 말 않고 곱게 먹히면서 독성도, 나쁜 냄새도 없는 걸 먹겠지요. 그렇게 되도록 손질하고 가공하는 게 요리이겠고요.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면 음식점이 되고 대규모로 가공을 하게 되면 식품산업이 되기도 합니다.

어떻든 다른 존재를 먹어야 사는 존재들은 자신이 먹는 것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스턴트식품만 먹다가 성격이 ‘인스턴트’ 해지는 것처럼요. 성격만이 아니라 몸도 인스턴트, 오늘도 내일도 인스턴트, 인생도 인스턴트해질 수 있습니다.

비슷한 논리로 장사꾼은 자신이 파는 상품의 속성을 닮게 됩니다. 한 어머니가 낳은 형제라도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는 성격이 좀 다르겠지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옛날 어른들이 입이 닳도록 이런 말을 하셨겠지요.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라!”

그러고 보니 어른들은 이런 말씀도 하셨네요. “말을 가려서 해라. 음식을 가려서 먹어라. 잠자리를 가려서 자라” 기타 등등. 어른들 말씀은 그른 게 없지요.

양배추를 먹으면 양배추가 된다는 말에 양배추 먹기를 포기한 돼지 아저씨, 양배추 소년이 가게에서 맛있는 거 사준다고 데려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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