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봉렬]서울시 ‘한양 역사구’

  • 입력 2007년 5월 19일 03시 01분


코멘트
1970년대의 밤은 끔찍한 추억이다. 야간통행금지 때문에 선량한 시민도 자정에 거리에 나오면 범죄자가 됐다.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온 국민이 국가권력에 소중한 시간을 반납해야 했다. 통금은 너무도 당연한 규율이었다. 용감한 반정부인사들도 통금 해제는 주장하지 않았다.

시간만 금지된 게 아니었다. 수도 서울에는 금지된 공간이 너무 많았다. 조선 중기의 불행한 왕인 경종의 능(서울 성북구 석관동)은 중앙정보부가 장악했다. 왕릉 출입금지는 물론, 주변 동네에 2층 건물을 올릴 수 없었다. 청와대 뒤 북악산과 옆의 인왕산도 출입금지였다. 중앙정보부나 대통령 집이 보일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6·25전쟁 때 생긴 야간통금은 30여 년 동안, 1·21청와대습격사건으로 생긴 출입금지는 40년 동안 지속됐다. 참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세월이었다. 잃어버린 것은 금지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뿐이 아니었다.

최근 마지막 금지 공간이었던 북악산 서울 성곽이 시민에게 공개됐다. 개방된 성곽을 따라 오르면서 잘 살펴보면 조선조의 창업자들이 왜 이곳에 왕도를 정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풍수지리설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서울의 출중한 지형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산과 산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러운 경계를 만들고, 크고 작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 안에 포근히 파묻힌 평지에 시가(市街)가 들어섰다.

지금의 서울은 공해와 소음으로 찌든 데다 고층건물이 역사적 경관을 훼손하고 있지만, 워낙 뛰어난 자연 환경이 인공적 결점을 감싸 준다. 특히 북악산 줄기를 등지고 앉은 경복궁이나 매봉에서 흘러온 지형에 묻힌 창덕궁과 종묘의 모습을 보면, 뛰어난 자연을 충분히 이용하면서 아름다운 도시를 창조한 선조들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성곽 길 개방은 잊고 지냈던 ‘한양’이라는 옛 도시의 기억을 되살려 놓았다. 잃어버렸던 서울의 역사도 다시 찾아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얘기한 서울은 산 위에서 내려다본 반경 1km에 불과하다. 시내로 내려오면 역사 도시 서울은 오간 데 없다. 자본의 논리와 부동산 가치에만 충실한 신자유주의 도시의 오만함과 어리석음만 가득하다. 덕수궁은 3분의 2가 잘려 나가 초라한 도시 공원이 됐고, 경희궁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해악의 뿌리야 일제의 식민도시 정책에 있었지만, 광복 후 정부와 시민에 의한 훼손도 적지 않았다. 강북 곳곳의 한옥촌을 철거해 아파트지구로 재개발했고, 북촌 한옥마을마저 다세대 빌라로 변모시켰다. 정도(定都) 600년 동안 시민들의 애환을 담아 왔던 피맛길마저 최근의 대형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종묘 앞 세운상가 재개발지역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을 세우자고 서울시나 해당 구청장이 허욕을 부리는 현실이다. 세계적 랜드마크를 세워 관광수입을 올리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바로 앞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파괴하자는 선동이다. 종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묘를 둘러싼 도시경관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도시의 역사적 경관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요, 관광자원이다.

성곽의 개방과 복원은 도시의 희미한 경계를 되찾은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진짜 도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도시를 되찾을 때다. 차제에 서울 성곽 안쪽 지역을 ‘한양 역사구’로 지정하면 어떨까? 개발보다 보존의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초고층 빌딩이 없는 저층 고밀도 지역으로, 보행자를 위해 차량이 양보하는 기품 가득한 구도심으로 이 특별구를 회복하면 좋겠다. 서울시 당국자들이 애타게 추구하는 도심 활성화에 이르는 지름길이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건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