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뒤엔 오히려 자신감이…" 죽음을 초월한 말기암 여성

  • 입력 2007년 5월 18일 2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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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의 화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히 살다가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 삶의 기로에 선 말기 암 환자를 만나봤다. 암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로 매년 6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현실이다. 이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병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진정한 비움을 실천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한국 사회는 죽음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으며, 죽음을 만난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있을까. 웰 빙(well being)만큼이나 웰 다잉(well dieing)도 중요하다.》

주부 송영혜(58·서울 용산구 이촌동) 씨는 밝은 얼굴로 간간히 웃음을 지어보였다. 남이 하는 이야기를 항상 잘 들어주고 이해해 줬다. 주변 사람들은 송 씨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 암 환자 맞아?'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만이 아니다. 그가 요즘 지내고 있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암 센터에 입원한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암은 이제 불치병도 난치병도 아니라지만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를 가지고 다닌다. 송 씨는 유방에서 생긴 암 세포가 척수와 뇌로 번져 현대 의학으론 더 이상 치료하기가 힘든 마리 암 환자다.

송 씨를 지난달 24일 처음 만났다. 이후 병원 측의 협조를 얻어 네 차례나 더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병색이 얼굴에 완연했고 수시로 나오는 구토 때문에 말을 걸기조차 미안했지만 그는 매번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3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4월 암이 재발했다. 항암제 치료를 꾸준히 받았으나 효과가 없자 치료를 중단하고 오빠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다시 입원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이 코앞에 닥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해보였다. 첫 충격은 컸다. 불안 분노 절망 등 암 환자가 거치는 전형적인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불안했죠. 뭐든 처음 경험하면 마찬가지 아닌가요. 스키를 탈 때도 넘어지기 전까지는 불안하잖아요. 한번 넘어진 뒤엔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죠. 암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물론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이 만들어내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몇 번 씩 구토를 하고 나자빠질 것 같은 허리 통증이 찾아오면 너무 힘들어 빨리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에도 빠진다.

하지만 그는 내일 당장 집에 돌아갈 사람처럼 아들 결혼을 어떻게 할 지, 김장을 어떻게 담글지를 걱정한다.

"내일 내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듭니다."

일반인에게 '죽음'이란 추상적인 관념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 죽음은 현실이다.

그는 '암'이란 저승사자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택시를 탔죠. 젊은 택시 기사가 '도박 때문에 아내와 이혼해서 지금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더라구요. 다 들어주고 이렇게 말했지요. '저는 말기 암 환자인데요. 아저씨는 저보다 건강하시니 앞으로 더 많은 생을 사실 수 있잖아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면 정말 성공하실 꺼에요.'"

순간 젊은 기사의 얼굴이 변했다. 송 씨는 자신의 조언에 감동한 그 기사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송 씨는 지난해부터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들고 소년원 아이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일찍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들이 자신을 살갑게 맞을 때마다 충만함을 느꼈다.

"나처럼 부족하고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들을 챙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건강할 땐 몰랐는데, 몸은 건강해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더라구요."

송씨는 이번에 입원을 하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책이며 그릇이며 한때 보석 수입 마케팅을 하면서 수집했던 귀금속들까지 모조리 남에게 주거나 버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애틋해지기도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욕심이 많았구나 반성도 했지요."

단 한 가지 '정리'되지 않는 건 외아들이다. 15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키워 온 송 씨는 '애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아들을 엄하게 키웠다. 그러다보니 아들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아들은 올해 서른 세 살이다. 두 사람은 한 집에 살면서도 대화를 하지 않고 남남처럼 지냈다. 몸이 건강했을 때도 아들은 언제나 가슴에 박힌 대못이었다.

송 씨는 어느날 아들을 조용히 불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아들이었다.

"그동안 제가 잘되라고 하신 말씀이 상처가 된 적이 많았어요. 1년만 더 살아 주신다면 정말 효도하고 싶은데…."

모자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송 씨는 "나 역시 처음으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모두가 암 덕분이죠. 이 놈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아들과 담을 쌓은 채 평생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하니까요. 요즘 아들과 매일 애인같이 통화하고 지낸답니다."

죽음을 맞닥뜨리고 난 뒤 겸손하고 솔직해졌다는 그는 "아들이 잘 살아 주었으면 하는 게 유일하게 남은 소원"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그래요, 아직 젊고 할 일도 많은 데 큰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불쌍하다고. 저도 비관했지요. 하지만 마음을 비우니 편해졌습니다. 내 뇌에 퍼진 암세포가 언제 날 혼수상태로 빠지게 할 지 모르지만 죽음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에요.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더 많이 찾고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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