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과도한 사학개입에 제동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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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전경. 연합뉴스
상지대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이 17일 학내 분규로 교육인적자원부가 파견한 상지대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을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감독과 개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재단 비리 등으로 파행 운영되는 사학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이 사학 법인의 설립 목적이나 정체성을 뒤바꾸는 선까지는 허용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건 경과와 판결 내용=한약재료학과 폐지와 전임강사 임용탈락 문제, 이사장 구속 등으로 1993년 이후 10년간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상지대 사태가 법정 공방으로 비화한 것은 2003년 12월 이사회 결의 때문. 학교가 어느 정도 정상화됐다고 판단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 선임을 결의한 것이다.

그러자 1993년 일괄 사표를 냈던 김문기 전 이사장 등 구(舊)이사들은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이사회 결의에 대해 김 전 이사장 등이 소송을 낼 권리가 있는지와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있는지였다.

1심 법원은 “이사회 결의에 하자가 있다 해도 구이사들의 이사 사임 또는 임기 만료 후에 이뤄진 만큼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소송 자체를 각하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임시이사들의 일방적인 정이사 선임 결의는 본질적으로 학교 법인의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사학의 공립화를 초래해 보상 없는 재산권 수용에 해당한다”며 김 전 이사장 등의 손을 들어 줬다.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하면서 “학교 법인에 대한 국가의 감독권도 학교법인 설립자의 의사에 부합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를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행사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리를 저지른 학교 법인의 임원에 대해 그에 합당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이를 시정하기 위한 수단이 지나쳐 함부로 학교 법인의 정체성까지 뒤바꾸는 단계에 이르면 위헌적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학 설립자 측의 주장을 대폭 인정한 항소심 판단보다는 다소 절충적인 태도를 취했다. 교육의 공공성과 학교 법인의 자율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

대법원은 또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현행 개정 사립학교법 25조 3항(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의 정상화 문제)에 대해서는 헌재가 결정할 사항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이사장 등이 다시 이사회에 복귀하거나 이사 선임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로 2003년 임시이사들이 선임한 정이사들의 권한도 상실돼 상지대는 당분간 이사회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됐다.

교육부는 상지대에 정이사를 선임하는 방안과 임시이사를 다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교육부는 개정 사학법에 따라 학내 구성원과 ‘상당한 재산 출연자’, 대학평의원회, 학교 발전 기여자 등의 의견을 물어 정이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학내 갈등이 심해 구성원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때에는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대법원 판결문을 정밀검토한 뒤 판결 취지에 따라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두 가지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번 소송을 낸 김 전 이사장이 상당한 재산 출연자나 학교 발전 기여자에 해당하는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다시 임시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태가 되면 학교 정상화 시점에서 유효한 사학법, 민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현행 사학법 제25조 3항에 따라 김 전 이사장 등의 의견을 들어 임시이사를 다시 파견하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사 선임 과정에서 양측의 견해차가 좁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현행 개정 사학법 제25조 3항에 대해선 헌재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헌재 결정에 따라선 이 같은 교육부의 조치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한편 옛 사학법에 따라 임시이사 체제에서 정이사 체제로 전환한 대학은 상지대 한성대 단국대 서원대 극동대 한국외국어대 등 모두 6곳이다. 이들 대학은 모두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했지만 상지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학내 구성원의 합의를 거쳤다. 고신대는 학내 구성원의 합의를 바탕으로 개정 사학법에 따라 정이사가 선임됐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상지대 사건 소송 일지▼

1962년 3월 고(故) 원홍묵 씨 청암학원(현 상지학원) 설립

1973년 11월 재정난에 따라 파견된 임시이사 김문기 씨 3대 이사장 취임

1993년 4월 김 씨 부정입학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1994년 3월 8일 대법원 징역 1년 6개월 확정)

1993년 4월 김 씨 등 이사진 일괄 사표

2003년 12월 임시이사 9인, 이사회 개최 및 정이사 9인 선임

2004년 1월 김 씨 등, 상지학원 상대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청구소송 제기

2004년 4월 춘천지법 원주지원 각하 판결

2006년 2월 서울고법 원고 승소 판결

2007년 5월 대법원 상고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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