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日, 여론 속내는 反중국 아니다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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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일본 방문은 객관적으로 보아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이후 일중(日中) 관계는 수년간 꽁꽁 얼어붙어 있었으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호전의 기회를 맞았다.

중국 정계 최고의 테크노크라트인 원 총리의 방일은 중국 정부 쪽에서도 양국 간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증거다. 원 총리는 자신의 방일을 ‘싸늘한 중-일 관계의 얼음을 녹이기 위한 여행’이라고 거듭 말했고 국회에서 연설했으며 ‘천황’을 방문했다. 양국의 정책 조정도 재개됐으니 그의 방일은 성공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 매스미디어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사전에 아무 귀띔도 없이 불쑥 ‘천황’에게 직접 중국 방문을 요청한 것이나 공동 여당인 공명당의 막후 실력자와 장시간 회담을 한 것은 일본 정치에의 교묘한 개입과 농락으로 비쳤다. 신문을 읽으면 ‘원 총리의 책략에 말려 농락당한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반(反)중국 성향이 강한 신문이나 잡지에는 더 혹독한 비판이 넘친다. 중국은 급속한 해군력 증강으로 세계의 안정을 위협하며 일본 영토에 도발을 되풀이하고, 남중국해 가스전에서는 일방적 개발로 일본 측의 가스를 도굴한다. 일본은 짓눌리고 이용당하면서도 그 중국의 총리를 예의 바르게 맞아 국회에서 연설하도록 했다. ‘사람 좋은데도 분수가 있지, 일본 국민을 희생해서 중국에 머리를 숙인단 말인가.’ 이런 주장이다.

비슷한 상황은 중국에도 있는 듯하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연히 아베 총리가 참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의 술수에 말려들어 방일할 필요가 있는가. 지도부는 경제 거래를 우선해 중국 인민의 이익과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의 주장을 뒤집어 놓은 듯한 논리다.

양국의 보도만 보면 일중 두 나라 정부가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만 여론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정말 일중 관계의 개선을 반대하는 것일까.

원 총리 방문 직후 여러 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10%포인트나 상승했다. 그 사이 아베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만한 일은 원 총리의 일본 방문 이외에는 없었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는 원 총리의 방일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일본의 여론은 중국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 양국 관계가 호전되는 것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 중국과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취임 이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사건은 이 두 가지, 총리의 한중 방문과 원 총리의 일본 방문이다. 일중 관계의 호전이 아베 정권을 떠받치는 것이다.

일본 언론인들 사이에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근대에 압도적인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 일본의 지위가 중국에 처음으로 위협받는 현실이므로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일본 최대의 교역 상대국인 한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일본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한다.

매스미디어와 달리 일본의 여론은 자존심이나 내셔널리즘보다 훨씬 현실적인 판단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신문과 잡지만을 봐서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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